나의 창작 시

(허만길 시) 산업체 근무 여학생 졸업 여행

별다홍 2015. 5. 16. 21:06

<허만길 교사(시인)가 1986년 12월 16일 밤, 서울 영등포여자고등학교 야간 특별학급 졸업 사은회에서 낭독한 시>

 

산업체 근무 여학생 졸업 여행

 

                    시인/문학박사 허만길

 

손 부르튼 회사 일

간신히 떨치고

1986년 12월 6일

겨우겨우 토요일 하루 말미

낮에는 일하고 밤에 배우는

서울 영등포여자고등학교 특별학급

아홉 학급 사백아흔두 제자

겨울 졸업 여행

 

차령고개 넘어서는

눈이라도 내렸으면 싶었다.

한 줄기 놀라운 감탄사

하늘에서 만들어 주었으면 싶었다.

 

천안이라 능수버들

가슴 깃 하얀

아기까치들 예쁘기도 했지.

공주에서 부여에서

고란사에서 백마강에서

추억과 우정

꽃잎처럼 굳게 새기더라.

 

세월 흘러도 이야기는 남으리.

졸음 쫓으며 고단하여도

희망이 별빛처럼 살아있는 공부

외롭고 고달파도

아프도록 꿈 설레던

여자고등학교 학창 시절

 

먼 뒷날 다시 뒤적이면

불길 같은 그리움이리.

하늘 꽃 같은 뜨거운 그리움

무지개로 피어 높으리.

 

【시를 만든 마음】

나(허만길)는 서울 영등포여자고등학교 교사로서 1985년(42살) 3월 1일부터 1987년 2월 28일까지 2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낮에는 산업체에서 일하고 밤에는 서울 영등포여자고등학교 야간 특별학급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교육하였다.

1985년 노사분규로 주식회사 대우어패럴의 폐업에 따라 퇴사한 야간 특별학급 여학생 130여 명과 극심한 불경기로 회사의 폐업 혹은 휴업으로 퇴사한 여학생 약 30명이 일자리와 잠자리를 잃고 방황하게 되자, 이들 160여 명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서울특별시, 노동부 서울관악지방노동사무소 등의 협조를 받아 실직자 전원의 수업료를 장학금으로 지급하도록 하고, 이들의 식사, 잠자리, 재취업 등 각종 애로 사항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모두가 졸업의 영광을 안을 수 있도록 했다.

나는 일자리와 잠자리를 잃은 학생들이 재취업할 수 있도록 부은 다리로 현기증을 느끼면서 수많은 업체를 방문하였다. 겨우 재취업한 학생들일지라도 임금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많고, 어떤 학생들은 대우어패럴에서 조금 받은 퇴직금조차 악덕업자에게 사기당하기도 하였다.

나는 이들 160여 명뿐만 아니라, 고향을 떠나 어려운 환경에서 한국수출산업공단(서울 구로공단)에서 생산직 일을 하며 공부하는 여학생들 모두를 애타는 교육자의 정신으로 보살폈다.

1985년 영등포여자고등학교 야간 특별학급 1,370여 명의 학생 가운데 자기 집에서 숙박하는 학생은 12.6%인 173명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 시골에서 서울로 와서 회사에서 기숙사 생활(53.3%)을 하거나 자취(31.0%)를 하거나 친척집(3%)에서 살았다.

나는 학생들의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노래 ‘일하며 배우며’를 만들고(1985. 5. 15.), 공단과 업체 관계자들이 참관한 가운데 다양한 프로그램의 첫 특별학급 학생 문예 발표회를 개최하여(1986. 5. 12.) 큰 감동과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학생들이 미성년자로서 부모와 멀리 떨어져 지내면서 업체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면 부랴부랴 달려가 업체 관리자와 협의하여 학생들의 인격과 권익을 보호하는 데 힘썼다.

나는 학생들이 밤늦게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선 뒤에는 한결같이 혹시나 몸이 아프거나 말 못할 사정으로 학교에 남아있는 경우가 있지는 않나 염려하여 모든 교실은 물론 모든 화장실까지 샅샅이 살피고, 어두운 밤길을 안전하게 걸어 버스를 잘 탔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 버스 정류장과 학교 주변을 순회했다.

그때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토요일은 물론이고 일요일에도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에서는 이렇게 어렵게 공부해 온 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토요일 하루 졸업 여행에 참가할 수 있도록 각 회사와 일일이 협의하여, 마침내 1986년 12월 6일(토요일) 학생들이 졸업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시 ‘산업체 근무 여학생 졸업 여행’은 제자들의 대견한 모습을 칭찬하고 싶고 그들의 행복한 앞날을 빌고 싶어서 읊은 시이다.

나는 이 시를 1986년 12월 16일 밤, 영등포여자고등학교 야간 특별학급 졸업 예정자들이 베푼 사은회에서 낭독하여 교사와 학생들 모두가 가슴 뭉클하였다.

나의 이와 같은 헌신적인 노력은 한국수출산업공단, 노동부 서울관악지방노동사무소, 서울특별시 등에 큰 미담으로 알려져 1987년 3월 상공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나는 1985년 3월부터 1987년 2월까지 2년 동안 영등포여자고등학교 야간 특별학급 교사로서 제자들을 위해 애타게 노력했던 일들을 모아 둔 자료를 불태우기 전에 그 주요 내용을 원고로 정리하여, 제자들이 학교를 졸업한 지 35년이 지난 2022년에 ‘저 푸른 별들에 제자들의 아픔과 소망이’(발행 책과 나무,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발간하였다.

시 '산업체 근무 여학생 졸업여행'은 허만길 저서 '저 푸른 별들에 제자들의 아픔과 소망이'에 수록되었다.

​◆ 허만길: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 석사. 홍익대학교 문학박사. 시인. 소설가. 1971년 '복합문학'(Complex Literature. '두산백과사전' 등재) 창시 및 최초의 장편복합문학 '생명의 먼동을 더듬어' 발간. 수필가. 문학평론가. 교육자. 국가시행 교원자격검정고시 수석합격으로 최연소 중학교 국어과교원자격증(18살) 및 수석합격으로 최연소 고등학교 국어과교원자격증(19살) 받음(‘기네스북’ 한국편 등재). 17살 1960년 진주사범학교 학생회위원장으로서 진주의 4.19혁명 앞장. 1990년 교원국외연수단을 인솔하여 중국을 방문하여 아무 표적 없는 대한민국 상하이임시정부 자리를 보고 현장 즉흥시 '대한민국 상하이임시정부 자리'를 읊고 귀국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자리 보존 운동을 펼쳐 성과를 거둠(시 '대한민국 상하이임시정부 자리'는 충남 보령시 주산면 '시인의 성지'에 시비로 건립됨). 18살 1961년부터 정신대 문제 제기 및 1990년 최초의 정신대 문제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 발표('두산백과사전' 등재). 1991년 '정신대 위령의 날' 제정 및 '국제 사람몸 존중의 날' 제정 제의. 문교부(교육부) 국어과 편수관, 교육부 국제교육진흥원 강사, 한국교육개발원 해외동포용 '한국어' 교재개발연구위원, 학술원 국어연구소 표준어 사정위원, 서울대학교 국어교육연구소 '국어교육학사전' 집필위원, 서울 당곡고등학교 교장 역임. (2024년)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저서: ‘한국 현대 국어 정책 연구’, '우리말 사랑의 길을 열면서', ‘정신대 문제 제기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 보존 운동 회고’, 장편복합문학 ‘생명의 먼동을 더듬어’. 시집 ‘역사 속에 인생 속에’, 장편소설 ‘천사 요레나와의 사랑’, 수필집 ‘진리를 찾아 이상을 찾아' 등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