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

허만길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 보존 운동 시작과 성과

별다홍 2008. 12. 25. 12:32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 보존운동

시작과 성과





                                                             

                                              시인•문학박사 허만길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1. 들어가는 말

허만길(문학박사시인소설가)은 교육부 중앙교육연수원 장학사로서 교원국외연수단을 인솔하여 1990613일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를 찾았으나, 아무 표적 없이 퇴색된 집에 중국인이 살고 있음을 보고 연수단 앞에서 현장 즉흥시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를 읊고, 귀국 즉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 보존운동을 펼쳐 성과를 거두었다.

그때는 대한민국과 중국 사이에 정식 국교가 없던 시기이었으며, 허만길의 그러한 노력은 1945815일 대한민국 광복 후 45년 만에 시작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 보존운동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역사와 국민에게 매우 소중하고 고귀한 대한민국의 임시정부 자리는 드디어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19193.1독립운동 직후 1919411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8.15광복까지 청사를 중국의 상하이(上海)의 몇 곳, 자싱(嘉興), 항저우(杭州), 쑤저우(蘇州), 전장(鎭江), 난징(南京), 창사(長沙), 광저우(廣州), 류저우(柳州), 구이린(桂林), 충칭(重慶) 등으로 옮겼다.

일반적으로 상하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라고 하면, 1926년부터 19324월까지 청사로 사용하던 곳을 가리킨다. 이 청사를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등으로 불러 왔다.

 

2. 1990613일 현장 즉흥시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읊음

허만길은 대한민국과 중국 사이에 정식 국교가 없던 시기에 교육부 중앙교육연수원 장학사로서 199067일부터 613일까지 교원국외연수단 행정요원(인솔요원)으로서 중국을 방문하였다. 중국 방문 마지막 날인 613일 연수단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가 있던 곳을 찾기로 했다.

전세버스는 그때로서는 상하이(上海)의 한 작은 거리인 마당로’(馬當路)를 향했다. 허만길은 연수단원들과 함께 마당로에 이르러 버스에서 내렸다. 허만길은 외짝으로 된 문들에 馬當路 3061’(마당로 3061), ‘3062’(3062) 등의 표시가 골목 안쪽으로 계속되어 있음을 보았다.

중국의 북경대학 한국어과 출신 중국인 안내원은 마당로 ‘3061’, ‘3062’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라고 했다. 그런데 허만길은 약간의 혼란에 빠졌다. 허만길이 한국에서 중국으로 출발하기 전에 중국을 다녀온 다른 사람들로부터 임시정부 자리가 상하이 마당로 ‘3064’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허만길은 ‘3062’의 집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3061’의 집 문을 두드리니, 조그마하고 어둑한 집안에서 머리가 허연 노파 한 분이 나와 인사를 받아 주었다. '3064'에도 노파가 있었다.

이렇게 일제 강점기의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는 위치조차 확실하지 않은 채 아무 표적 하나 없이 퇴색된 집으로 초라하게 상하이 마당로에 근근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곳 사람들조차 제대로 기억해 주지 않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였다. 허만길은 광복된 지 45년이 되도록 그 자리에 아무 표적 하나 세워져 있지 않은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허만길은 다시 버스에 오르자마자 연수단원들 앞에서 현장 즉흥시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를 읊었다. 즉흥시를 듣는 연수단원들은 모두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허만길의 현장 즉흥시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는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 보존운동의 첫 신호와 같은 것이었다.

 

3.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 보존운동 전개와 성과

허만길은 버스를 홍구공원(虹口公園홍커우공완) 앞에 멈추게 하여 그 안을 살폈으나, 홍구공원(虹口公園)에도 윤봉길 의사의 의로운 애국혼을 기리는 표적 하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허만길은 귀국하자마자,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 및 해외 애국 유적지 보존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먼저 1990630일자로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를 보존하려는 뜻과 지혜를 모읍시다라는 제목으로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각계각층에 돌렸다. 현장 즉흥시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와 이 시를 짓게 된 배경도 알렸다.

이 글을 읽은 여러 신문사 관계자들은 장한 일을 시작했다며, 허만길의 글을 신문에 실어 주었다. ‘상해 임정 자리 푯말 하나 없다니’(한국일보 1990. 7. 5.), ‘상해 임정 옛 자리 번지마저 헷갈려’(조선일보 1990. 7. 10.), ‘상해 임정 자리 보전 힘쓰자’(동아일보 1990. 7. 16.), ‘상해 임정 자리 영구 보전하자’(경향신문 1990. 7. 20.) 등이 그 보기이다.

허만길은 중국 상하이 시장(上海市長)에게 1990728일자로 편지를 써서, 그 편지를 728일 오전 910분경 서울 광화문 우체국에서 속달등기(요금 1,960)로 부쳤다.

그 편지에는 먼저 일제에 빼앗긴 조국을 찾으려던 우리 애국 선조들이 중국에서 임시정부를 세워 일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 준 중국과 중국 국민을 고맙게 생각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매우 소중한 의미로 살아있으므로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에 어떤 표적을 세워 주고, 또 그곳을 상하이시(上海市)에서 특별한 관심으로 보전해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담았다.

신문에서 허만길의 글을 읽은 국민들은 동감한다는 격려를 수없이 표시했다. 여러 정치인과 기업인들도 정식 국교가 없는 상태였지만, 중국의 유명 인사들과 만나면, 허만길의 글을 화제로 올렸다. 허만길이 인솔했던 교원연수단에 뒤이어 중국을 방문한 다른 교원연수단원들이나 중국인 안내원들도 허만길의 글을 으레 화제로 삼았다고 했다.

그 뒤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 보존에 대해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에 의사 표시를 했다. 이에 중국에서는 대한민국 기업의 협조를 받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사들이는 등 임시정부 청사 복원에 노력하였다.

19928월에 대한민국과 중국 사이에 국교가 정상화되었다. 대한민국의 노태우 대통령이 1992930일 국빈으로 중국을 방문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복원이 진행 중이던 상하이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 방명록에 서명하였다.

그리고 허만길이 처음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 보존운동을 펼친 때로부터 28개월 뒤, 19933월 중국에서는 상하이 마당로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 관리처(大韓民國臨時政府旧址管理處)’를 설치하여 복원된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4월부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한편 허만길은 중국 측에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의 행정적 위치를 확인해 줄 것을 요청한 결과 그것은 상하이 마당로 3064’라는 것을 알았다. 뿐만 아니라, 허만길은 중국 당국으로부터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는 백범 김구(金九) 선생이 중국을 떠날 때 중국인 친구에게 넘겨주었으며, 그 친구는 고수희’(顧守熙구서우시) 님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4.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한국 시 대사전수록, 시비 건립

이렇게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는 허만길의 보존운동의 결과로 보수 단장되고,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리고 그곳은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201594일에는 더욱 새롭게 꾸민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가 공개되었다. 낡은 시설을 개선하고, 3층의 오래된 전시물을 새것으로 바꾸고, 1층 회의실의 역대 임정수반 설명 자료를 크게 보완했다. 청사 주변의 환경도 정비하였다.

허만길이 1990613일 중국 상하이에서 아무 표적 없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를 보고 읊었던 현장 즉흥시 대한민국 상하이임시정부 자리한국 시 대사전(발행 이제이피북Ejpbook, 서울. 2011), 허만길 시집 아침 강가에서(발행 도서출판 순수, 서울. 2014) 등 여러 문헌에 실려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이 시는 2010423일 충청남도 보령시에 위치한 세계적인 시비 공원이면서 한국현대문학 100주년 기념탑이 있는 시와 숲길 공원(처음 이름: 항일 민족시인 추모공원)에 첫 시비로 건립되었다. 시의 제목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자리 보존운동 시초의 시>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시의 본문 아래에는 이 시를 짓게 된 배경을 새기었다. 시비의 뒷면에는 허만길 약력을 새기었다.

2015425시와 숲길 공원안에 묻어 둔 한국 문인 인물자료 100년 보존 타임캡슐에는 허만길 시인의 자필 시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 그리고 허만길 시인의 주요 저서들을 보관하고 있는데, 100년 뒤 2115425일에 열어 보게 된다.

 

5.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일본어와 영어로 번역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2008년 문재구 문학박사(시인)가 일본어로 번역하였다. 번연된 시 大韓民國上海臨時政府遺跡(한국중국일본 시인 시화집) 동북아시집(東北亞詩集)(편찬 한국현대시인협회. 발행 도서출판 천산, 서울. 2008. 10. 29.)에 한글 시와 더불어 실리어(631-632), 해외에 소개되었다.

또 이 시는 2018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은귀(영문학 전공) 교수가 영어로 번역하였다. 영어로 번역된 시 ‘The Site of th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in Shanghai’는 국제계관시인연합 한국위원회(United Poets Laureate International Korea Committee) 발행 Poetry Korea Vol.7. 2018에 실리어 해외에 소개되고 었다.

 

6. 1990년 정신대 문제 최초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발표

허만길은 199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 보존운동을 처음으로 펼친 데 이어, 그해에 일제의 대한민국 강점기의 아픔과 관련되는 또 하나의 문제를 크게 일깨웠다.

일제의 대한민국 강점기에 한국과 일본에서 애국독립운동을 한 아버지 허찬도(許贊道. 처음이름 허기룡許己龍. 1909-1968) 선생의 교훈을 받고 자란 허만길이 18(1961) 초등학교 교사 임용되면서부터 제기해 온 정신대(종군위안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199010한글문학12(편자 한글문학회. 발행 미래문화사, 서울)에 발표하여 정신대(종군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환기시키는 주요 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소설 제목은 2007두산백과사전에 등재되어 풀이되고 있다.

허만길은 정신대(종군위안부) 문제 제기 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20041210일 제56주년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표창을 받았다.

2010년 허만길은 정신대(종군위안부) 문제를 제기한 과정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 보존 운동을 펼친 과정을 회고한 저서 정신대 문제 제기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 보존운동 회고(발행 주식회사 에세이퍼블리싱, 서울. 2010. 12. 21.)를 발행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 보존운동 시초의 시>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


                    시인문학박사 허만길

 

이만큼이나 큰

조국의 고동이도록

우렁찬 걸음이도록

세계로 지구로 뻗는

희망찬 역사의 함성이도록

 

먼 이국의 땅 상하이 마당로(馬當路) 306()

한 낡은 자리 그리도 구석진 자리에서

우리의 옛 임들

그리도 가늘게

그리도 허덕이며

우리를 지켰을 줄이야

우리를 살았을 줄이야

우리를 키웠을 줄이야.

 

, 통곡으로 피로

울며 외치며 쓰러지며

단군을, 김유신을, 세종을, 서산 대사를

이어 주었을 줄이야.

 

이곳 이웃들에게도

까맣게 전설이 끊어진

조그만 가게 옆 골목

한 허름한 집

집지기 백발 노파가 쓸쓸한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

 

오늘 우리가 서도록

옛 임들 자빠지지 말자며

의기와 혼이 엉기던 자리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

 

그러나 이제라도 조각달 뜨면

두 조각 내 나라 땅 내려다보며

임들의 한 서려 머무를 자리

아직도 숨결 시원히 거두지 못할 자리

상하이 마당로 뒷골목

고결한 보국충정 피맺힌 자리여.

 

내 조국, 내 겨레 얼룩진

거룩한 자리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

우리가 버려 둔 자리.

<1990613>

 

허만길

아버지 허찬도 선생의 애국독립운동으로 1943년 일본 교토(京都) 오쿠보(大久保)에서 태어나고 이듬해 대한민국 경남 의령에서 성장. 교육학석사(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교육학과). 문학박사(홍익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1971복합문학’(複合文學, Complex Literature) 창시(‘복합문학두산백과사전 등재). 시인(1989한글문학시 추천). 소설가(1990한글문학소설 추천). 국가 시행 세계 최연소 중학교교원자격증(18) 및 최연소 고등학교교원자격증(19) 받음(‘기네스북한국편 등재).

정신대문제 제기 및 정신대문제 첫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1990) 발표(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표창. ‘원주민촌의 축제두산백과사전 등재). 대한민국 광복 후 최초로 199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자리 보존운동 성과(충남 보령시 시와 숲길 공원에 허만길 시비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자리건립. 시 일본어와 영어로 번역).

서울 경복고교 교사교육부 국어과 편수관중앙교육연수원 장학사교육부 국제교육진흥원 강사서울특별시교육연구원 연구사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해외동포용 한국어교재개발 연구위원학술원 국어연구소 표준어 사정위원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사전집필위원국무총리실 소속 한국청소년개발원 협력연구위원한국진로교육학회 이사서울특별시교육청 진로교육추진위원장서울 당곡고등학교 교장 역임

(현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한글학회 회원. 한국국보문인협회 자문위원. 한국신문예문학회 자문위원

저서: ‘한국 현대 국어 정책 연구’. ‘정신대 문제 제기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 보존 운동 회고’. ‘우리말 사랑의 길을 열면서’, ‘우리말 사랑의 길’. (복합문학) ‘생명의 먼동을 더듬어’, (장편소설) ‘천사 요레나와의 사랑’, (시집) ‘당신이 비칩니다’, (시집) ‘열다섯 살 푸른 맹세’, (시집) ‘아침 강가에서’, (수필집) ‘열네 살 푸른 가슴’, ‘(수필집) ’진리를 찾아 이상을 찾아‘, (수필집) ’빛이 반짝이는 소리‘. (깨달음) ’인류를 위한 참얻음‘, (고등학교 교과서) ’진로 상담‘(공저)

많은 학술 논문, 문학 평론, 단편소설 발표

노래 작사: ‘악성 우륵 찬가’, ‘우정의 자리’, ‘여의도 꽃길’, ‘한강샛강다리’, ‘해운대 달밤’, ‘의령 아리랑’, ‘자굴산’, ‘우리 자연 우리 환경등 약 20

  

-------

참고 문헌

허만길, 정신대 문제 제기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 보존운동 회고(발행 주식회사 에세이퍼블리싱, 서울. 2010)

허만길, <허만길의 시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 보존운동 성과>, 주간한국문학신문 제32120179136(발행 주간한국문학신문사,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