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 문제 최초 단편소설
‘원주민촌의축제’(1990년) 창작 과정과 성과
소설가•시인 허만길
(문학박사/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1. 들어가는 말
허만길(소설가. 시인. 문학박사)은 1961년(18살) 초등학교 교사 시절부터 일제 강점기의 정신대(종군위안부) 문제를 꾸준히 주장해 오다가, 1990년 10월에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A Feast in the Village of Natives)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정신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단편소설로 간주되고 있다. 이 작품 발표 이후 언론과 문단과 공직사회와 국민들의 정신대 문제에 대한 관심은 크게 치솟았으며, 허만길 역시 정신대 문제를 더욱 활발히 제기하게 되었다.
2. 애국독립운동을 한 아버지의 교훈
허만길의 아버지 허찬도(許贊道 1909-1968년) 선생의 처음 이름은 허기룡(許己龍)인데, 1919년 10살 때 경상남도 의령군 칠곡면에서 3·1독립운동에 참가하여 경찰의 추적을 당하였다. 1936년(27살) 경상남도 진양군 집현면 장재못(저수지)에 양수기(무자위)를 설치하여 농민들의 가뭄 걱정을 덜어 주려 했다. 양수기의 시운전 단계에서 일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며 폭력을 행사하고 조선인이라며 멸시하는 집현면 주재소 구로다(黑田) 부장을 가격하여 경상남도 진주구치소에서 2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허찬도 선생은 1940년(31살) 일본 오사카부의 군수물 공장 아사히철공소(朝日鐵工所)에서 고야마(湖山)로 불리며 일하다가, 아사히철공소 조선인화친회(朝鮮人和親會)를 조직하여 회장직을 맡고서, 동맹파업으로 공장 가동을 멈추게 하였다. 일본 신문에 보도되고, 한겨울 밤중에 경찰에 체포되어 경찰서로 호송되다가 격투하여 탈출하였다.
허찬도 선생은 허만길이 태어나던 해 1943년 9월 일본 교토부 오쿠보 비행장에서 노무자 일을 하던 중 강제 징병을 당했다. 시가켄(滋賀縣) 훈련소에서 이질을 앓아 치료받으면서, 일본인 군의장(군의관 우두머리)에게 일제의 한국 침략의 부당성을 일깨우고, 군의장의 도움으로 5개월 만에 병역 해제증을 받아 귀가하였다. 1944년 7월 가족들을 대한민국 고향으로 먼저 보내고, 나라가 독립할 때까지 일본 거주 한국인들에게 항일 정신을 북돋우었다.
허만길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일제의 대한민국 강점기에 일제가 저지른 나쁜 일들을 자주 들었는데, 그 가운데는 한국의 여인들을 정신대(종군위안부)로 끌고 가 몹쓸 짓을 했다는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3. 본격적 정신대 문제 최초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1990년) 발표
아버지에게서 정신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허만길은 초등학교 교원 양성 국립 고등학교 과정인 진주사범학교(경상남도 진주시)를 졸업하고, 1961년 3월 31일(18살) 부산 시내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받아,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허만길은 아버지의 교훈을 바탕으로, 학생들이나 교육자 동료나 주변 사람들에게 정신대 이야기를 내세우곤 했다.
정신대(종군위안부) 문제는 허만길이 공직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는 이미 역사의 뒷전으로 깊이 숨어 들어가고 있었는데, 허만길은 이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1965년 6월에 조인된 ‘한일협정’(한·일 간 기본 관계에 관한 조약. Treaty on Basic Relations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Japan)에서조차 정신대 문제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이미 정신대 문제가 얼마나 깊이 잊혀 가고 있었던가를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부산 시내 초등학교 교사, 중학교 교사, 서울 시내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87년 3월(43살)부터 교육부 공직인(국어과 편수관. 공보관실 연구사. 중앙교육연수원 장학사)으로 근무하면서도, 허만길은 기회 있을 때마다 너무 많이 잊어진 정신대 문제를 그냥 역사의 뒷전에 묻히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웠다. 물론 언론이나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가끔 정신대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 역시 큰 파급 효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허만길은 오랜 전부터 정신대(종군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한 소설을 써 보아야겠다는 뜻을 실행하기로 했다. 문학 작품 특히 대중성이 높은 소설 작품을 통해서 이 문제를 부각한다면, 문인들이나 국민들이나 이를 쉽게 잊지 않을 것이며, 언젠가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허만길은 1971년(28살) ‘복합문학’(複合文學, Complex Literature: 한 편의 문학 작품을 완성함에 있어, 시, 소설, 희곡, 시나리오, 수필 등 문학의 여러 하위 장르를 두루 활용하여, 전개상의 변화와 활력을 꾀하고 주제의 형상화에 상승효과를 거두기 위해 복합장르로 구성한 문학 형태)을 창안하여, 첫 장편 복합문학 ‘생명의 먼동을 더듬어’를 월간 《교육신풍》 1971년 9월호-11월호에 일부 연재한 뒤 1980년 단행본으로 출판한 바 있고, 1989년 2월 《한글문학》 제9집을 통해 시를 추천받은 바 있어, 이미 문학 창작 활동을 해 오던 터였다.
그러던 차에 허만길은 결정적인 정신대 문제 소설 착상의 계기를 만나게 되었다.
1989년 9월 제1회 한민족체육대회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을 때였다. 어느 휴일 낮에 아내와 함께 그것이 텔레비전으로 중계 방송되는 것을 본 순간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한민족 해외동포가 500만 명에 이르고, 옛 소련, 중국, 헝가리 등 세계 50개국에 거주하는 1,330명의 해외동포가 이 대회에 참가하여, 축구, 배구, 씨름, 활쏘기, 줄다리기 등 17종목에 걸쳐 경기를 치른다면서 여러 경기를 중계 방송하였던 것이다. 허만길은 그 순간에 바로 볼펜과 종이를 찾아 정신대 문제 소설의 주제와 소재와 구성을 초안하기 시작하였다.
이로부터 얼마 뒤에는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 주로 일요일을 이용해 구체적인 집필을 진행하였다. 반세기 동안의 시간적 배경과 한국, 만주, 중국, 타이완 등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작품을 전개해 나갔다. 허만길은 한국과 중국 사이에 정식 국교가 없던 시기에 교육부 중앙교육연수원 장학사로서 교원국외연수단을 인솔하여, 1990년 6월 4일부터 1990년 6월 13일까지 타이완, 홍콩, 중국을 방문하였다. 작품 완성 단계에서는 교원국외연수단 인솔에서 살핀 바를 참고하여 공간적 배경 가운데 타이완과 관련되는 부분을 보완하여 처리할 수 있었다.
허만길은 이 작품으로 소설 추천을 받아 소설가로서도 문단에 등단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작품으로 완성된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를 1990년 7월 11일 《한글문학》 신인 작품 응모 작품으로 한글문학회(회장 안장현 시인)에 보냈다.
드디어 허만길의 작품은 《한글문학》 제12집(1990년 가을•겨울호. 편자: 한글문학회 회장 안장현. 발행: 미래문화사, 서울. 발행일: 1990년 10월 5일) 115-134쪽에 실리었다. 책의 135쪽에는 허만길의 ‘소설 당선 소감’이 허만길의 사진과 함께 실리었다. 136쪽에는 심사위원 구인환(문학평론가, 소설가) 서울대학교 교수의 ‘심사평(추천사)’이 “역사의 공간 속의 참신한 제재”라는 제목으로 진술되어 있었다.
추천 심사평에는 “일제의 압정에 항쟁하며 독립의 열매를 키우던 치열한 삶이 해외 동포의 고국 방문이란 연결고리로 외손인 민속학도에 의해 그 신비가 벗겨지는 충격과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추리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구성으로 치밀하게 서사의 핵을 구조화하는 기법이 좋다.”는 말이 담겨 있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정신대 문제를 단순히 단편소설의 소재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정신대 문제 제기를 위한 단편소설로서는 최초의 작품으로 간주되고 있다.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는 발표 즉시 문인과 언론을 비롯하여 각계로부터 큰 관심을 끌면서, 잊혀 가던 정신대 문제를 일깨우는 촉매 역할을 했다. 정부의 중앙행정기관 공무원들도 허만길의 소설과 정신대 문제를 화제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이 소설이 발표된 지 약 한 달쯤 뒤, 1990년 11월 초 제주도에서 한국소설가협회의 세미나가 열렸다. 이 세미나에 참가했던 구인환 서울대학교 교수는 소설가들이 허만길의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야말로 잃어버릴 뻔했던 한국 문학의 한 사명적 영역을 일깨워 준 훌륭한 작품이며, 한국 소설가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작품이라고 평가했다는 것을 한글문학회 회장 안장현 시인과 허만길에게 전해 주었다.
4. 한글문학상 신인상 수상(1991년)과 정신대 위령의 날 제정 제의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는 이듬해 1991년 11월 30일 한글문학상 신인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한글학회에서 운영하는 한글회관(서울)에서 개최된 시상식에는 허웅(서울대학교 교수. 한글학회 이사장), 구인환(서울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소설가), 공덕룡(수필가), 정을병(소설가), 김남석(문학평론가), 장덕순(문학평론가), 정주영(현대그룹 명예회장) 님들과, 수필가 김소운 님의 부인, 소설가 김용호 님의 부인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였다.
한글문학회 회장 안장현 시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는 “문학사에 길이 기록될 수작”이라고 극찬해 왔는데, 시상식에서도 인사말을 통해 이 작품에 대한 극찬을 되풀이했다.
허만길은 한글문학상 신인상을 받는 것을 계기로 “ ‘정신대 위령의 날’ 제정 및 ‘국제 사람몸 존중의 날’ 제정 제의”(유인물. 1991년 11월 30일)를 각계에 하면서, 계속 종군위안부 문제를 역사적 관심사로 환기시킴과 동시에 정신대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자는 운동을 벌였다. 언론에서는 《주간조선》(1991년 12월 15일), 《한국일보》(1992년 1월 6일), 《조선일보》(1992년 1월 18일), 《동아일보》(1992년 1월 21일), 《주간경향》(1992년 2월 9일), 국가안전보장회의와 비상기획위원회 공동 발행 《비상기획보》(1992년 봄호. 1992년 3월 1일) 등이 호응해 주었다.
1992년 1월 언론에서 일제 때 12살 초등학교 어린이들마저 정신대에 끌려간 사실이 뚜렷이 드러났다고 하자, 그동안 허만길이 꾸준히 제기해 온 정신대 문제는 급속도로 국내외의 큰 관심을 끌게 되었다.
허만길이 정신대 문제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를 완성해 가던 즈음인 1990년 5월 노태우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때맞추어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여대생대표자협의회가 정신대 문제에 대해 성명서를 발표한 일, 허만길이 1990년 10월 5일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를 발표한 직후 1990년 10월 17일 여성 단체가 정신대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과 일본 정부에 공개서한을 보낸 일, 1990년 11월 16일 37개 여성 단체가 중심이 되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결성한 일, 1991년 8월 14일 정신대 피해자 김학순 님이 기자 회견을 한 일 등도 정신대 문제 제기 및 해결을 위해 주요 역할을 했다.
5.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의 문학적 영광
허만길은 정신대 문제 제기 활동과 정신대 문제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 발표 공로로 2004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제56주년 ‘인권의 날’ 기념식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표창을 받았다.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는 2007년 3월 《두산백과사전》(발행 주식회사 두산)에 등재되어, 설명되었다. 등재 항목은 ‘원주민촌의 축제’[原住民村의 祝祭, A Feast in the Village of Natives〕인데, 인터넷 사이트 《네이버》(http://www.naver.com)의 검색창에서 ‘원주민촌의 축제’라고 입력하면, 《두산백과사전》에 실린 내용을 통해 이 작품의 문학적 의의와 줄거리를 알 수 있다.
사단법인 국제PEN한국본부와 사단법인 한국육필문예보존회가 충청남도 보령시의 후원을 받아, 2008년 보령시 《시와 숲길 공원》에 건립한 ‘한국현대문학 100주년 기념탑’ 앞의 ‘빛나는 한국문단의 인물들’을 새긴 작은 비석들에는 문학인 이름과 대표작 1편씩을 새기고 있는데, 거기에는 “허만길: 시인, 소설가. 「원주민촌의 축제」”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와 같이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는 문인들의 좋은 평가와 언론을 비롯한 각계의 관심을 받으면서 많은 영광스러움을 안았다. 허만길의 정신대 문제 제기 활동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허만길의 저서 《정신대 문제 제기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 보존운동 회고》(발행 에세이퍼블리싱, 서울. 2010년 12월 21일)에 나타나 있다. 《한글문학》 제12집(1990년)에 처음 실렸던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도 이 책의 158-186쪽에 다시 실려 있다.
그리고 월간 《신문예》 발행인 지은경 문학박사의 요청에 따라, 월간 《신문예》 제94호 2018년 7•8월호(발행 도서출판 책나라, 서울)에 이 단편소설을 또 다시 실어, 세상 사람들의 정신대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문학사의 자료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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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허만길, <정신대 문제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1990년) 창작 과정과 성과>, 주간한국문학신문 제319호 2017년 8월 30일 6쪽 (발행 주간한국문학신문사, 서울)
◉ 허만길, 《정신대 문제 제기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 보존운동 회고》(발행 에세이퍼블리싱, 서울. 2010년)
■ 허만길
▲1943년생. 문학박사. 1971년 ‘복합문학’(複合文學, Complex Literature) 창시(‘복합문학’ 두산백과사전 등재). 시인(1989년 ‘한글문학’ 시 추천). 소설가(1990년 ‘한글문학’ 소설 추천). 국가 시행 최연소 중학교교원자격증(18살) 및 최연소 고등학교교원자격증(19살) 받음(‘기네스북’ 한국편 등재).
▲정신대문제 제기 및 정신대문제 첫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1990년) 발표(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표창. ‘원주민촌의 축제’ 두산백과사전 등재). 대한민국 광복 후 최초로 199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자리 보존운동 성과(충남 보령시 ‘시와 숲길 공원’에 허만길 시비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자리’ 건립. 시 일본어와 영어로 번역).
▲서울 경복고교 교사•교육부 국어과 편수관•중앙교육연수원 장학사•교육부 국제교육진흥원 강사•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해외동포용 ‘한국어’ 교재개발 연구위원•학술원 국어연구소 표준어 사정위원•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사전’ 집필위원•국무총리실 소속 한국청소년개발원 협력연구위원•한국진로교육학회 이사•서울특별시교육청 진로교육추진위원장•서울 당곡고등학교 교장 역임.
▲(현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한글학회 회원
▲저서: ‘한국 현대 국어 정책 연구’. ‘정신대 문제 제기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리 보존 운동 회고’. ‘우리말 사랑의 길을 열면서’, ‘우리말 사랑의 길’. (복합문학) ‘생명의 먼동을 더듬어’, (장편소설) ‘천사 요레나와의 사랑’, (시집) ‘당신이 비칩니다’, (시집) ‘열다섯 살 푸른 맹세’, (시집) ‘아침 강가에서’, (수필집) ‘열네 살 푸른 가슴’, ‘(수필집) ’진리를 찾아 이상을 찾아‘, (수필집) ’빛이 반짝이는 소리‘. (깨달음) ’인류를 위한 참얻음‘, (고등학교 교과서) ’진로 상담‘(공저) 등
▲가곡 작사: ‘악성 우륵 찬가’, ‘우정의 자리’, ‘여의도 꽃길’, ‘한강샛강다리’, ‘해운대 달밤’, ‘의령 아리랑’, ‘자굴산’ 등 약 2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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