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만길 문학박사의 연구논문
<의령 자굴산의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음의 일치성 및 어원 연구> 요약 소개
《의령신문》제418호 2016년 3월 4일 3쪽(발행 의령신문사, 경남 의령군)
허만길 문학박사가 《의령문화》 제25호 16-34쪽(발행 의령문화원. 2016년 1월)에 발표한 연구논문 <의령 자굴산의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음의 일치성 및 어원 연구>를 《의령신문》 제418호 2016년 3월 4일 3쪽에 요약 보도한 내용 |
<자굴산>의 한자 표기음 조선 전기에도 <자굴산>이었다
<도굴산>으로 부른 적 없어
어원 <잣골산>에서 <자골산> 거쳐 <자굴산>으로
허만길 문학박사, 《의령문화》 제25호 연구논문에서 밝혀
그동안 의령의 진산(鎭山)인 <자굴산>의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 <闍崛山>과의 사이에 발음의 일치 혹은 불일치의 논란으로 많은 사람들과 각종 문헌과 인터넷 매체와 등산객들에게 큰 혼란을 주어 왔는데, 둘 사이 발음의 불일치를 주장하는 근거는 한자 자전(字典)에 보편적으로 ‘闍’는 ‘도’ 음과 ‘사’ 음으로만 나타나고 ‘자’ 음을 나타낸 자전은 찾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부르는 말 <자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 사이에는 발음 관계가 일치하지 않으며 <자굴산>은 <도굴산>에서 변한 말일 것이라고 주장해 왔던 것이다.
이에 의령군 칠곡면 출신 허만길 문학박사(시인. 전 문교부 편수관)는 의령문화원(원장 허흔도)이 2016년 1월에 발행한 《의령문화》 제25호에 실은 연구논문 <의령 자굴산의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음의 일치성 및 어원 연구>에서 현재 부르는 말 <자굴산>의 한자 표기음은 조선 전기에도 <자굴산>이었으며, <도굴산>으로 불린 적은 없다고 했다. 아울러 허만길 박사는 “더 이상 의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산 자굴산(闍崛山) 이름과 관련하여 현재와 미래에 혼란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허만길 박사는 이 논문에서 먼저 한글 표기가 있는 우리나라의 한자 자전은 1909년 이후에 나타나는데, 그러한 한글 표기가 있는 한자 자전에서 <자굴산(闍崛山)>의 한자 표기 가운데 ‘闍’를 ‘도’ 음과 ‘사’ 음으로만 명시한 것이 보편적이고, 1984년 명문당(名文堂)에서 발행한 《명문한한대자전(明文漢韓大字典)》에서 ‘闍’의 ‘자’ 음을 명시한 것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2015년 현재까지도 《재경 의령군향우회60년사》의 책 내용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부르는 말 <자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 사이에는 발음이 일치하지 않으며, <자굴산>은 <도굴산>에서 변한 말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현실을 분석했다.
그리고 허만길 박사는 자굴산의 한자 표기 <闍崛山>은 조선 전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년) 등에 나타나며, 조선 전기에 우리나라 조상들은 한자의 뜻과 음의 이해와 활용을 위해 중국에서 편찬한 운서(韻書)와 자전(字典)을 활용했음을 고려하면서, 중국의 《집운(集韻)》(1039년)과 《강희자전(康熙字典)》(1716년)을 직접 연구한 결과 ‘闍’에 ‘자’ 음(之奢切)이 있으며 그 뜻은 ‘성대’(城臺)라는 점을 규명하고서, 조전 전기에도 부르는 말 ‘자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 사이에는 발음이 일치했다고 결론지었다. 여기서 ‘之奢切’(지사절)이 ‘자’ 음이라고 하는 까닭은, 옛날 중국에서 한자음을 표기할 때 반절법(半切法)이라는 방식을 취했는데, ‘之’(지)에서는 초성 ‘ㅈ’을 택하고 ‘奢’(사)에서는 중성 및 종성인 ‘아’을 택하여 ‘자’로써 ‘闍’의 음을 표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허만길 박사는 한자어 <자굴산(闍崛山)>의 뜻풀이를 ‘성대(성의 망대) 모양을 한 높은 산’이라고 했다. 허만길 박사는 여기서 유의할 것은 ‘성대’의 뜻을 ‘성문의 망대(성문대)’나 ‘성의 망루(다락집 모양의 망대)’라고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성대는 성문이 없는 곳에도 만들기도 하고, 다락집 모양이 아닌 다른 모양이나 특별한 건물 없이 일반 성곽보다 상대적으로 우뚝 높고 평평한 모양으로 만들기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허만길 박사는 <자굴산>의 근원되는 말의 형태 곧 어원(語源)은 우리 고유어 ‘잣골’에 한자어 ‘산’(山)이 결합한 <잣골산>이라고 했다. ‘잣’은 ‘성’(城)의 옛 고유어이며, ‘골’은 ‘골짜기’(谷)의 뜻으로서 <잣골산>은 “성(잣) 모양을 하고서 수많은 골짜기를 품고 있는 산”이라는 뜻인데, 뒤에 <잣골산>이 변하여 <자골산>이 되고, 다시 <자골산>은 고유어 지명을 한자어 지명으로 바꾸어 문서에 기록하는 행정 정책에 의해 한자어 <자굴산(闍崛山)>으로 변경되었다고 했다.
허만길 박사는 행정 기록에는 한자로 <闍崛山>(자굴산)으로 썼더라도 일반인들은 20세기 중반까지도 고유어로 <자골산>(‘산’은 한자어)이라 말하기도 했으며, 고유어 <자골산>을 한자로 소리 나는 대로 <紫骨山>(자골산)으로 적기도 했다고 했다. 2003년에 편찬된 《의령군지》에는 ‘자굴티’를 ‘재골티’로 말하고 있음을 지적했는데, 이것은 고유어 <자골산>의 일부 형태가 남은 탓이라고 했다.
허만길 박사는 어떤 기록에는 <자굴산(闍崛山)>을 <堵堀山>으로 적은 것이 나타나는데, 한글 표기의 현대 한자 자전에서 ‘堵’를 ‘도’ 음으로만 명시했다고 해서 이를 <도굴산>으로 읽어서는 안 되며, 중국의 ≪광운(廣韻)≫(1008년), 《집운(集韻)》(1039년), 《강희자전(康熙字典)》(1716년) 등에 ‘자’ 음(音者)도 명시하고 있으므로, <자굴산>으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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