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문학박사 허만길 논문) 의령 자굴산의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음의 일치성 및 어원 연구(의령문화 25호. 2016)

별다홍 2025. 12. 8. 18:44

〖《의령문화》 제25호 16-34쪽 (발행 의령문화원, 경남 의령군. 2016. 1. 31.)〗

 

의령 자굴산의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음의

일치성 및 어원 연구

문학박사 / 전 문교부 편수관 허만길

1. 들어가는 말

자굴산은 오랜 옛날 경상남도 의령 땅에 의령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 온 영산(靈山)이며 진산(鎭山)이다. 자굴산은 문헌상으로는 조선 전기 1454년(단종 2년))에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1481년(성종 12년)에 완성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 한자로 ‘闍崛山’이라고 표기한 것이 초기 문헌 기록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부르는 말 ‘자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 발음과의 사이에 대하여 문제 제기를 해 왔다. ‘자굴산’이라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음 사이의 일치 혹은 불일치의 글이나 말이 계속 나왔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2015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자굴산’에 관한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음 사이의 일치 혹은 불일치의 논란은 현재의 사람들과 후세의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것임은 뻔한 일이다. 이러한 혼란은 자굴산 이름과 관련하여 수많은 인쇄물과 인터넷 매체에 일관성 있고 신뢰성 있게 등재되도록 하여야 하고, 자굴산을 찾는 수많은 등산객에게도 일관성 있고 신뢰성 있는 정보를 제공하여야 하는 데 이롭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자굴산 옛 이름에 관해 연구 토론을 바라며’라는 평론을 《의령신문》 제407호 2015년 12월 4일 7쪽에 실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글에서는 부르는 말 ‘자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 발음 사이의 일치성에 관한 결론을 이끌어내고, 나아가 ‘자굴산’(闍崛山)의 올바른 뜻풀이를 하고, ‘자굴산’의 어원(어떤 단어의 근원적인 형태. 또는 어떤 말이 생겨난 근원) 곧 자굴산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도 밝혀 보고자 한다.

 

2. 자굴산의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 관계의 논란 내용

 

2.1. 논의의 기본 내용

자굴산의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음의 관계에 대한 논란의 기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한글로 한자의 뜻과 음을 나타낸 한자 자전(옥편)에서 보편적으로 자굴산(闍崛山)의 한자 표기 첫 글자 ‘闍’의 음이 ‘도’와 ‘사’로 명시되어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자굴산’이라는 이름은 ‘도굴산’에서 변한 말이거나 ‘사굴산’에서 변한 말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부르는 말 한글 표기의 ‘자굴산’과 그것의 한자 표기 ‘闍崛山’과는 불일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굴산의 한글 표기와 한자 표기와의 관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지녀 온 허백영은 1984년 10월에 초판으로 출간된 《명문한한대자전(明文漢韓大字典)》에서 '闍'는 ‘도’ 음과 ‘사’ 음 말고도 ‘자’ 음이 있음을 발견하고서, 자굴산 이름은 옛날부터 ‘자굴산’으로 불리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엇갈리는 주장은 2015년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다음에 자굴산의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의 관계에 관한 주장의 구체적 사례를 소개해 본다.

 

2.2. 허백영의 주장(1996년)

나도 어릴 때 1950년대에 부르는 말로는 ‘자굴산’인데, 한자로는 왜 ‘도굴산’으로 쓰는 것일까 하고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내가 처음으로 구체적인 글을 읽게 된 것은 1996년이다. 의령의 향토 문화 연구에 힘쓰고 1997년부터 2005년 1월까지 의령문화원 원장을 지낸 허백영의 ‘자굴산 산 이름’이라는 제목의 글을 1996년 재부산 칠곡향우회에서 발행한 《장함(獐含)》 창간호에서 읽었던 것이다.

허백영은 자굴산 이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옥편에는 '闍' 글자의 음을 ‘도’와 ‘사’ 둘 글자로만 풀이하고 있으니, ‘도굴산’이 아니면 ‘사굴산’인데, 어째서 ‘자굴산’이냐는 게 문제였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과의 토론은 물론 전해지는 각종 문적, 향내의 산재한 누정각의 기문과 문집류 등을 조사해 보아도 ‘闍’ 이외의 글자를 쓰진 않았는데”(허백영, 1996:223쪽).

 

허백영은 이어진 글에서 ‘闍’에 대하여 보통 쓰고 있는 자전에는 ‘도’와 ‘사’로 쓴다고 되어 있지만, 1984년 초판으로 출간된 《명문한한대자전(明文漢韓大字典)》에는 '闍'가 ‘도’ 음과 ‘사’ 음 말고도 ‘자’ 음도 명시하고 있다는 것을 다음과 보이고 있다.

 

“1984년 10월에 초판으로 출간된 《명문한한대자전(明文漢韓大字典)》에는 ‘도’, ‘사’ 외에 ‘자’의 훈음이 있는 것이다. ‘성문의 망대’, ‘성대’(城臺)를 뜻할 때는 ‘자’로 쓴다는 풀이가 있다. 결국 무식한 도깨비가 부적을 모른다는 속담처럼 무식의 소치였음을 깨닫게 된 셈이다. 따라서 ‘자굴산’은 ‘성문 위에 높다랗게 설치된 망대(망루) 모양 불끈 솟은 큰 산’이란 이름 풀이가 알맞을 것 같다.”(앞책, 224쪽)

 

나아가 허백영은 ‘闍’의 뜻과 음을 (1) <성문의 망대(망루) 자>, (2) <성 위의 겹문 도. 성문 위 망대 도. 성문 도>, (3) <성문 위의 망대 사. 중을 화장할 사. 사범이 되는 승려 사. 중의 칭호 사. 범어의 음역에 쓰일 사>로 정리했다.(앞책, 225쪽). 허백영은 마지막으로 ‘闍’에 ‘자’ 음이 있음을 근거로 하여, 자굴산(闍崛山)의 뜻풀이를 ‘성문 위의 망루처럼 우뚝 솟은 큰 산’으로 했다.(앞책, 225쪽).

 

허백영의 위의 글을 보면, 자굴산의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음의 관계에 대한 문제의 논의는 한글 표기가 있는 한자 자전에서 일반적으로 ‘闍’의 음이 ‘도’ 음과 ‘사’ 음으로만 나타나 있는데, 왜 실제 말에서는 ‘자굴산’이라고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허백영은 1984년 10월 출간된 《명문한한대자전(明文漢韓大字典)》에 ‘闍’는 ‘자’ 음도 명시하고 있으므로, 한자 표기 ‘闍崛山’이 ‘자굴산’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 것이다. 허백영은 자굴산의 이름은 현재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 전기에도 ‘자굴산’으로 불렀을 것이라고 유추한 것이다.

허백영은 의령문화원 발행 《의령문화》 제4호 ‘자굴산의 한자 이름 闍崛山’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주장을 하고 있다.(허백영, 1998:76-77쪽).

뿐만 아니라 2004년 의령문화원에서 발행한 《의령실록》은 《조선왕조실록》 가운데서 의령과 관련된 사항을 뽑아 한문 원문과 한글 번역문을 묶어 싣고 있는데,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지리지’ 제150권(‘의령실록’ 81쪽)에 있는 한자 표기 ‘闍崛山’을 한글 표기로 ‘자굴산’이라고 하고 있다. 한문 고전 번역의 관례로 보아, 아무런 <주> 없이 ‘자굴산’으로 한글 표기한 것은 번역진들이 조선 전기에도 ‘闍崛山’을 ‘자굴산’으로 읽었다고 판단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2.2. 《재경 의령군향우회60년사》의 주장(2015년)

허백영이 1996년 이후 자굴산을 한글로 ‘자굴산’으로 적는 것과 한자로 ‘闍崛山’으로 적는 것과의 사이에는 발음상 잘못된 관계가 없다고 주장해 왔음에도 그로부터 20년이 되는 2015년에도 한글 표기 ‘자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 사이에는 발음이 일치하지 않으며, 자굴산은 ‘도굴산’으로 불리다가, 다음에 ‘사굴산’으로 불리고, 그 다음에 ‘자굴산’으로 불리었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음을 본다.

그러한 주장은 의령 관련의 주요 단체인 재경 의령군향우회가 발행한 《재경 의령군향우회60년사》의 ‘의령의 명산 자굴산’에서도 기술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굴산) 지명은 ‘성문 위에 높게 설치된 망루 모양으로 우뚝 선 산’이란 뜻에서 유래한다. 한글로 자굴산으로 쓰면서 한자는 도굴산(闍堀山)으로 쓴다. 원래 도굴산(闍堀山)으로 불렀으나 첫 글자를 ‘사’로도 읽으며, 사굴산에서 자굴산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향토학자들에 의하면 '闍'는 성문의 망대 또는 성대를 뜻할 때는 ‘자’로도 읽는다고 한다.”(재경 의령군향우회, 2015:130쪽).

 

《재경 의령군향우회60년사》에서는 자굴산에 대해 한글로 ‘자굴산’으로 쓰면서 한자는 ‘도굴산’(闍崛山)으로 쓴다는 한자 표기와 한글 표기의 불일치를 단정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또 《재경 의령군향우회60년사》에서는 “자굴산(闍堀山)은 옛 문헌이나 고지도 즉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하여 《동국여지지》와 《팔도지지》, 《여지도》. 《해동지지》 등에 ‘闍堀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자굴산으로 불리어진다.”(앞책, 130쪽)라고도 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한자로 ‘闍堀山’이라고 쓰고 있는데, 심각한 착오를 일으키고 있다. ‘闍堀山’이 아니라, ‘闍崛山’으로 써야 하는 것이다. 《재경 의령군향우회60년사》에서는 “《조선지지자료》(의령) 모의면(현재 대의면), 《조선지형도》에는 도굴산(堵堀山)으로 각각 표기되어 있다.”(앞책, 130쪽)라고 했는데, ‘堵’는 중국 고대부터 ‘자’, ‘도’, ‘사’ 세 음이 있는데, ‘자굴산’이라고 해야 할 것을 ‘도굴산’이라 하고 있음도 큰 착오이다.

《재경 의령군향우회60년사》에서는 '闍'를 향토학자들이 성문의 망대 또는 성대를 뜻할 때는 ‘자’로도 읽는다고 소개하고서도, 자굴산은 원래 ‘도굴산’으로 불리다가 다음에 ‘사굴산’으로 불리다가 그 다음에 ‘자굴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3단계 이름 변천을 제시하고 있다. 또 《재경 의령군향우회60년사》에서는 자굴산의 뜻풀이를 ‘성문 위에 높게 설치된 망루 모양으로 우뚝 선 산’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허백영이 '闍'의 ‘자’ 음이 지닌 뜻을 이용하여 ‘자굴산’ 뜻풀이를 한 ‘성문 위의 망루처럼 우뚝 솟은 큰 산’과 실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없다.

 

3. 문제 제기 활성화 시기

자굴산의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음 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의 활성화 시기를 추정해 보기로 한다.

자굴산의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음 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한결같이 한자에 한글로 뜻(훈)과 음(소리)을 적은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한자 자전(옥편)을 근거 자료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한자에 한글로 뜻과 음을 적은 우리나라의 한자 자전은 세종이 1443년(세종 25년)에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하여 1446년(세종 28년)에 반포한 때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뒤에야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한글로 한자의 뜻과 음을 적은 ‘자전’(字典)이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나타난 것은 지석영(池錫永)이 1906년 저술을 완성 뒤 1909년 7월 회동서관(匯東書館)에서 발행한 ≪자전석요(字典釋要)》이다. 《자전석요》의 수록 한자 수는 16,295자이다. 1915년에는 신문관(新文館)에서 《신자전(新字典)》 초판을 발행하였다. 《신자전(新字典)》은 뒤에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여러 차례 발행되었다. 이 이후로 우리나라에는 한글이 표기된 크고 작은 한자 자전들이 줄지어 나왔다.

위와 같은 점을 고려하면, 자굴산의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음 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의 활성화 시기는 우리나라에서 한자에 한글로 뜻(훈)과 음(소리)을 적은 한자 자전(옥편)들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로서 1920년대 이후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4. 자굴산의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음과의 일치성 규명 방안

자굴산의 부르는 말 ‘자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 음과의 관계에 관한 문제 제기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현재 고유명사로 불리고 있는 ‘자굴산’이 옛날에는 ‘도굴산’으로 불리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근거는 한글로 한자의 뜻과 음을 표기한 한자 자전(옥편)이 ‘闍’의 음을 ‘도’와 ‘사’ 둘로만 나타내고 ‘자’로는 나타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 자굴산으로 불리는 것은 옛날에 ‘도굴산’으로 불리다가 ‘자굴산’으로 바뀌어 불리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 이다.

이 경우 1984년에 출간된 《명문한한대자전(明文漢韓大字典)》에 ‘闍’는 ‘자’ 음도 명시하고 있음을 별로 중시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들이 한자 자전(옥편)에 ‘闍’의 음을 ‘도’와 ‘사’ 둘로만 나타낸 것에 너무도 오래도록 익숙해 있고, 그러한 두 음의 한글 표기가 보편적인 상황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 한글 표기의 한자 자전 가운데 《명문한한대자전》이 다른 자전들에 비해 오랜 세월 뒤에 발행되었다는 점에서 그것으로 조전 전기의 ‘闍’의 음에 ‘자’ 음이 있었다고 쉽게 추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둘째, 현재 고유명사로 불리고 있는 ‘자굴산’은 한글로 표기할 때는 ‘자굴산’으로 하지만, 한자음으로는 ‘도굴산’(闍崛山)으로 쓴다고 인식하는 점이다. 이것은 부르는 말 ‘자굴산’이 한자 표기음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그 근거 역시 한글로 한자의 뜻과 음을 표기한 한자 자전에 '闍'의 음을 ‘도’와 ‘사’ 둘로만 나타내고 ‘자’로는 나타내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보는 것 같다. 이 경우 역시 1984년에 출간된 《명문한한대자전(明文漢韓大字典)》에 ‘闍’는 ‘자’ 음도 명시하고 있음을 별로 중시하지 않으려는 관념이 작용하는 것 같다. 그 까닭은 위의 첫째 항에서 적은 이유와 같으리라 본다.

셋째, 현재 고유명사로 불리고 있는 자굴산은 원래 ‘도굴산’(闍崛山)으로 불리다가 다음에 ‘사굴산’으로 불리고, 다시 현재와 같이 ‘자굴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근거는 첫 글자 '闍'를 ‘사’ 음으로도 읽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굴산 이름과 관련한 문제를 위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면, 그 문제의 올바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절차를 밟아 규명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첫째, 한글로 한자의 뜻과 음을 표기한 한자 자전(옥편)에 ‘闍’의 음을 한글 표기로 ‘도’와 ‘사’ 둘로만 나타내고 있는 것이 어느 정도 보편적인가 하는 사실을 알아보는 것이다.

둘째, 한글로 한자의 뜻과 음을 표기한 한자 자전은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수백 년 뒤에 나오기 시작했으므로, ‘자굴산’을 한자로 적은 초기 문헌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조선 단종 2년. 1454년)이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조선 성종 12년. 1481년) 발행 당시 에 ‘闍’의 음이 ‘도’와 ‘사’ 둘만 있고 ‘자’ 음이 없었던 것이 사실인가 하는 것을 확실히 규명해 보는 것이다. 조선 전기에 闍’ 음의 실상이 어떠했던가를 규명한다면 자굴산이 ‘도굴산’으로 불리었을 가능성 여부는 명백히 가려지는 것이다.

셋째, 나로서는 이제까지 《재경 의령군향우회60년사》 외에 어떤 글에서도 자굴산이 ‘도굴산’에서 ‘사굴산’으로 불리다가 ‘자굴산’으로 불리었을 것이라는 점을 보지 못했지만, 과연 자굴산이 ‘사굴산’으로 불리었을 가능성이 있는가를 검토해 보는 것이다.

 

5. 자굴산의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음 사이의 일치성 규명

 

5.1. 한글 표기의 한자 자전에 나타난 '闍' 음에 관한 논의

5.1.1. 한글 표기의 한자 자전 역사

한자에 한글로 뜻과 음을 적은 우리나라의 한자 자전은 세종이 1443년(세종 25)에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하여 1446년(세종 28)에 반포한 때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뒤에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한자에 한글로 뜻과 음을 적은 자전(字典)이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나타난 것은 지석영(池錫永)이 1906년 저술을 완성 뒤 1909년 7월 회동서관(匯東書館)에서 발행한 ≪자전석요(字典釋要)》이다. 《자전석요》의 수록 한자 수는 16,295자이다. 1915년에는 신문관(新文館)에서 《신자전(新字典)》 초판을 발행하였다. 《신자전(新字典)》은 뒤에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여러 차례 발행되었다. ≪자전석요≫는 대체로 중국 청 나라 때 발행된 《강희자전(康熙字典)》과 조선 정조 때 발행된 ≪규장전운(奎章全韻)≫을 참고로 삼고, ≪신자전≫은 ≪강희자전≫을 규범으로 삼았다. 이런 점으로 보아, 우리나라에 한글로 한자의 뜻과 음을 적은 한자 자전은 1920년대 이후에야 전국적으로 널리 활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전석요》와 《신자전》 이후에 한글로 한자의 뜻과 음을 적은 한자 자전은 끊임없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한자 자전이라 해서 그 규모나 내용이 다 같은 것이 아니다. 한자를 수록한 수가 다 같지도 않으며, 각 자전이 같은 한자를 실었다 하여 그 풀이 내용이 다 같은 것도 아니다. 따라서 ‘闍崛山’의 첫 글자 '闍'에 관해 한글로 뜻과 음을 적은 것이 각 자전마다 같을 수가 없다. 이는 중국 청 나라 때 발행된 《강희자전(康熙字典)》은 표제 한자 수가 49,000자 남짓 되는데 비해 1909년 우리나라 회동서관(匯東書館)에서 발행한 ≪자전석요(字典釋要)》의 표제 한자 수는 16,295자에 지나지 않음을 보아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발행한 한글로 한자의 뜻과 음을 적은 한자 자전에 '闍'를 수록한 것도 있고 수록하지 않은 것도 있을 수 있다. 또 '闍'를 수록한 자전이라 할지라도 그 풀이가 다 같을 수도 없다. 그런데 한글로 한자의 뜻과 음을 적은 우리나라의 한자 자전은 대부분 '闍'에 관한 풀이에서 그 음을 ‘도’ 음과 ‘사’ 음만 보이고 있다. 내가 2015년 12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한글 표기로 되어 있는 많은 한자 자전을 살펴보았지만, '闍'에 관한 음을 ‘도’ 음과 ‘사’ 음 외에 다른 음을 더 표기한 자전을 찾기가 어려웠다. 김혁제, 김성원이 공동으로 편저하고 명문당(明文堂)에서 1984년에 초판으로 발행한 《명문한한대자전(明文漢韓大字典)》에서는 '闍'에 관해 ‘도’ 음과 ‘사’ 음 외에 ‘자’ 음도 명시하고 있었다. 《명문한한대자전(明文漢韓大字典)》은 한자 51,853자를 수록한 큰 자전이다.

 

5.1.2. 《명문한한대자전》에 나타난 '闍'의 음

《명문한한대자전》에 나타난 '闍'의 뜻과 음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하면 다음과 같다.(김혁제.김성원, 1984:1819쪽).

 

闍: (1) 성 위의 겹문 도(*闉闍. 城上重門). 성문 위의 망대 도(*城門臺). 성문 도(*城門). (2) 성 위의 겹문 사(*闉闍). 성문 위의 망대 사(*城門臺). 중을 화장할 사. 사범 되는 승려 사. 중의 칭호 사. 범어의 음역에 쓰일 사. (3) 성문의 망대 자 (*城臺)

* <참고> ( ) 속은 《명문한한대자전》에서 ‘闍’의 뜻을 한문으로 풀이한 것임.

 

5.1.3. 《명문한한대자전》의 '闍'의 ‘자’ 음 명시 평가

지석영(池錫永)이 1906년 저술을 완성 뒤 1909년 7월 회동서관(匯東書館)에서 발행한 ≪자전석요(字典釋要)》 이후 '闍'의 음을 한글로 ‘도’ 음과 ‘사’ 음으로 명시한 자전은 많지만, ‘자’ 음을 명시한 자전은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여기에 김혁제, 김성원이 공동으로 편저하고 명문당(明文堂)에서 1984년에 초판으로 발행한 《명문한한대자전(明文漢韓大字典)》에서 '闍'에 관해 ‘도’ 음과 ‘사’ 음 외에 ‘자’ 음이 있음도 명시하고 있음은 부르는 말 ‘자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과의 사이에 발음이 일치함을 주장하는 데 근거 자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명문한한대자전》이 나오기 이전 70년 이상 동안 많은 자전에서 '闍'의 음으로 ‘도’와 ‘사’만 익숙히 보아 왔던 사람들로서는 ‘자굴산’의 옛 이름이 ‘도굴산’이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또 한글 표기의 한자 자전 가운데 《명문한한대자전》이 다른 자전들에 비해 오랜 세월 뒤에 발행되었다는 점에서 그것으로 조전 전기의 ‘闍’의 음에 ‘자’ 음이 있었다고 쉽게 추정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5.1.4. 한자 자전 ‘闍’의 ‘자’ 음 인식 한계 극복 방법

1996년 허백영이 《명문한한대자전》에 '闍'에 ‘자’ 음이 있음을 내세워 ‘자굴산’은 ‘도굴산’에서 바뀐 이름이 아니라고 주장하여도 많은 사람들은 이를 쉽게 수긍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하나의 모습이 2015년 9월 1일 재경 의령군향우회가 발행한 《재경 의령군향우회60년사》에서 떳떳이 자굴산은 한글로 ‘자굴산’으로 쓰면서 한자는 ‘도굴산’(闍崛山)으로 쓴다고 한 것이었으며, 자굴산은 원래 ‘도굴산’(闍崛山)으로 불렀다고 한 것이다.

따라서 부르는 말 ‘자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 음과의 사이에 서로 일치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규명하고, 자굴산의 옛 이름이 ‘도굴산’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산 이름 ‘闍崛山’이 문헌상으로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조선 전기에 ‘闍’ 음의 실상이 어떠했던가를 직접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5.2. 조선 전기 자굴산의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음의 일치성 규명

조선 전기 자굴산의 부르는 말 ‘자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의 음이 일치하였는지 않았는지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조선 전기에 '闍'가 어떤 뜻과 어떤 음으로 쓰였던가를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조선 전기에 '闍'가 어떤 뜻과 어떤 음으로 쓰였는지 그 실상을 밝히자면, 한글로 표기한 조선 전기의 한자 자전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그 당시의 한자로 표기한 한자의 뜻과 음을 나타낸 문헌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수밖에 없다.

 

5.2.1. 중국의 자전과 운서의 개념

조선 전기 이전에 한자의 뜻과 음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로는 중국에서 발행한 한자 자전이나 운서를 이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 옛 조상들도 한자의 뜻과 음을 연구하고 활용하는 데는 중국에서 발행한 자전이나 운서를 활용하였다.

중국 최초의 자전(字典)으로는 서기 121년에 간행된 《설문해자(說文解字)》가 있다. 이것은 후한(後漢)의 허신(許愼)이 저술한 책으로 스스로 창안한 부수법에 따라 540개의 부수로 나누어 9,353개의 표제 한자를 선정하여 그 하나하나에 대해 본래의 글자 모양과 뜻과 발음을 종합적으로 해설한 책이다. 《설문해자》는 한자를 부수에 따라 배열한 중국 최초의 자서이다. 그 원본은 전하지 않으며, 송나라 서현(徐鉉)이 편찬한 교정본이 전한다.

남북조 시대의 고야왕(顧野王)이라는 학자가 한자의 뜻과 음을 바르게 밝히기 위하여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를 바탕으로 542부수와 16,900여 자로 된 자전(字典)을 543년에 만들어 《옥편(玉篇)》이라고 하였다. 이 분류 방식은 이후 한자 자전의 원형이 되었고, 《옥편》은 곧 한자 자전을 뜻하는 용어가 되기도 했다. 그 뒤 《옥편》은 여러 차례 보완 개작되었는데, 당(唐) 나라 고종(高宗) 때 674년 손강(孫强)이 글자 수를 보태었고, 송(宋) 나라 진종(眞宗) 때 진팽년(陳彭年), 오예(吳銳), 구옹(邱雍) 등이 손강본을 바탕으로 크게 수정하여 22,700여 자를 수록한 《대광익회옥편(大廣益會玉篇)》을 편찬하였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 이후 《옥편(玉篇)》 외에도 여침(呂忱)의 ≪자림≫, 풍간괄(馮幹括)의 ≪자원≫, 이종주(李從周)의 ≪자통≫, 매응조(梅膺祚)의 ≪자휘≫, 왕석후(王錫侯)의 ≪자관≫ 등 많은 자서(자전. 옥편) 부류가 나왔으며, 이런 가운데서 ‘자전’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오게 된 것은 청 나라 강희제(康熙帝)의 칙명으로 1716년에 편찬한 ≪강희자전(康熙字典)≫이다.

중국의 한시(漢詩)는 일정한 곳에 같은 운(韻)을 지닌 한자를 사용하는 형식을 취하는데, 한자를 주로 운(韻)을 중심으로 분류한 일종의 한자 발음 표기 자전을 운서(韻書)라고 한다. 중국의 운서는 시대별로 많이 편찬되었는데, ≪절운(切韻)≫(601년), 《당운(唐韻)》((713-741년 사이), ≪광운(廣韻)≫(1008년), ≪예부운략 禮部韻略)≫(1037년), 《집운(集韻)》(1039년), ≪홍무정운(洪武正韻)≫(1375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5.2.2. ≪강희자전(康熙字典)≫(1716년)과 《집운(集韻)》(1039년)

자굴산을 한자로 ‘闍崛山’으로 표기한 초기 문헌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년)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1481년)이 조선 전기에 속하는 문헌이므로, 이 시대에 ‘闍’가 어떤 음을 지녔던가를 알기 위해 나는 여러 기초 조사를 거쳐 중국의 ≪강희자전(康熙字典)≫(1716년)과 《집운(集韻)》(1039년)에서 그 실상을 파악해 보기로 했다.

청 나라 강희제(康熙帝)의 칙명으로 1716년(강희 55년)에 편찬된 《강희자전(康熙字典)》은 장옥서(張玉書), 진정경(陳廷敬) 등 30명이 5년에 걸쳐 완성한 자전이다. 수록 한자 수는 49.000자 남짓 된다. 후한의 《설문해자(説文解字)》와 그 이후에 나온 역대 자전들을 종합해 편찬한 것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121년), 《옥편(玉篇)》(543년), 《자휘(字彙)》(1615녀), 《정자통(正字通)》(1670년) 등과 운서 《당운(唐韻)》, 《광운(廣韻)》, 《집운(集韻)》, 《운회(韻會)》, 《홍무정운(洪武正韻)》 등의 내용을 두루 인용하였다.

《강희자전》은 근대 이전에 만들어진 최대의 자전으로서 한자의 옛 뜻과 음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우리나라의 조선 중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편찬되었지만, 중국의 역대 자전들을 종합해 편찬하였으므로, 우리나라의 조선 전기의 한자음을 이해하는 데도 직접적인 중요 자료가 된다. 《강희자전》은 많은 판본이 있는데, 청 나라 내무부가 발행한 초판을 ‘내부본’(內府本)’이라고 한다.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 1780년에 편찬한 《일본번각 강희자전(日本飜刻康熙字典)》 ‘안에이본’(安永本)도 유명하다.

≪강희자전≫은 한자의 음을 반절법(半切法)을 이용하여 표기하였다. ‘반절법’(半切法)이란 한자의 음을 나타낼 때 다른 두 한자의 음을 반씩 따서 합치는 방법을 뜻한다. ‘東’(동)의 음을 나타내기 위해 ‘東 德紅切’이라고 표시하는데, ‘德’(덕)의 초성인 ‘ㄷ’과 ‘紅’(홍)의 중성 및 종성인 ‘옹’을 합쳐 ‘동’이라는 음을 나타내도록 하는 것과 같다.

《집운(集韻)》은 중국 송(北) 나라 인종(仁宗)의 칙명(勅命)을 받아 정도(丁度) 등이 1039년에 편찬한 운서이다. 우리나라 조선 전기 이전에 편찬되었으므로, 조선 전기의 한자 발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집운(集韻)》에 수록된 한자 수는 53,000자가 넘는다. 그리고 이 《집운(集韻)》은 한자의 뜻도 풀이해 두고 있다.

 

5.2.3. 《강희자전》과 《집운》에 명시된 '闍' 음의 검토

나는 먼저 《강희자전》에서 '闍'에 관한 풀이를 찾아보기로 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강희자전》은 중국의 고대로부터 이 책이 완성된 1716년 이전까지의 한자 하나하나에 대한 뜻과 음을 나타내고 있다. 한자 표기의 ‘闍崛山’이 나타나는 초기 문헌은 1454년에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과 1481년에 완성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므로, 《강희자전》에서 ‘闍’가 어떤 뜻과 어떤 음을 지녔던가를 파악한다면, ‘闍崛山’의 한자음이 처음부터 ‘자굴산’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나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 1780년에 편찬한 《일본번각 강희자전(日本飜刻康熙字典)》 ‘안에이본’(安永本)을 검토해 보았다.

《강희자전》에서 ‘闍’는 (1) ‘當孤切’(당고절), ‘東徒切’(동도절), ‘音都’(음도) 등으로 나타낸 ‘도’ 음이 있고, (2) ‘時遮切’(시자절), ‘石遮切’(석자절), ‘音蛇’(음사) 등으로 나타낸 ‘사’ 음이 있고, (3) ‘之奢切’(지사절), ‘音遮’(음자) 등으로 나타낸 ‘자’<*옛 표기 형태로는 ‘쟈’> 음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었다. 참고로 ‘遮’는 ‘자’와 ‘차’ 두 음이 있는데, 여기서는 ‘之奢切’(지사절)의 대표글자로서 ‘자’<*옛 표기 형태로는 ‘쟈’> 음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강희자전》에는 분명히 ‘闍’는 ‘도’ 음, ‘사’ 음, ‘자’ 음과 같이 세 음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闍’의 ‘자’ 음과 관련하여 “〚集韻〛之奢切音遮城臺也”라고 하였다. 곧 “집운(集韻)에서 ‘闍’는 지사절(之奢切) 자(遮) 음이며, 뜻은 성대(城臺)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지사절’(之奢切)이란 ‘지’(之)의 초성 ‘ㅈ’과 ‘사’(奢)의 중성 및 종성 ‘아’가 합쳐진 ‘자’<*옛 표기 형태로는 ‘쟈’> 음이란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遮’(자. *옛 표기 형태로는 ‘쟈’)의 음과 같다고 한 것이다. 참고로 ‘遮’는 ‘자’와 ‘차’ 두 음이 있는데, 《집운(集韻)》에서 ‘遮’는 평성(平聲) ‘마’(麻) 운의 ‘자’ 음(之奢切) 대표글자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강희자전》에서는 ‘闍’가 ‘자’ 음으로 사용했음이 《집운(集韻)》에 나타나고 있다고 명시했다. 또 《강희자전》에서는 《집운(集韻)》에 ‘闍’가 ‘도’ 음(東徒切)과 ‘사’ 음(時遮切)이 있다고 한 것도 명시했다.

나는 다시 《강희자전》에서 명시하고 있는 《집운(集韻)》(1039년)에 ‘闍’에 ‘자’ 음이 실지로 명시되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집운(集韻)》을 검토했다.

《집운(集韻)》의 ‘平聲三’의 ‘麻第九’의 ‘遮(之奢切)’ 곧 ‘자’ 음에 “闍 城臺也詩出其闉闍”라고 되어 있었다. 이는 ‘闍’가 ‘자’ 음(之奢切)으로서 뜻은 성대(城臺)이며, 《시경(詩經)》에 ‘出其闉闍’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참고로 《시경(詩經)》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으로 공자(孔子)가 편찬하였다고 전하여지나 확실하지는 않다. 이로 보아, 분명히 《강희자전》에서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집운(集韻)》에도 ‘闍’가 ‘자’<*옛 표기 형태로는 ‘쟈’> 음을 지니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었다.

 

5.2.4. 조선 전기에도 ‘闍崛山’과 ‘자굴산’의 발음 관계 일치 규명

나는 중국의 북송(北宋) 인종(仁宗)의 칙명에 따라 정도(丁度) 등이 1039년에 편찬한 《집운(集韻)》과 청(淸) 나라 강희제(康熙帝)의 칙명으로 장옥서(張玉書), 진정경(陳廷敬) 등이 1716년(강희 55년)에 완성한 《강희자전(康熙字典)》에 ‘闍’는 ‘도’ 음(東徒切), ‘사’ 음(時遮切), ‘자’ 음(之奢切)을 명시하고 있음과 그 뜻은 ‘성대’(城臺)라고 한 점을 규명하였다. ‘闍’는 1039년 《집운(集韻)》이 편찬되기 이전부터 ‘자’ 음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 전기 1454년(단종 2년)에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1481년(성종 12년)에 완성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등장하는 한자 표기 ‘闍崛山’은 오늘날까지 현실적으로 부르는 말 ‘자굴산’과 발음상으로 일치한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다. 조선 전기에도 부르는 말 ‘자굴산’<*옛 표기 형태로는 ‘쟈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 사이에는 발음 관계가 일치했다고 단정할 수 있게 되었다.

 

6. ‘자굴산’을 ‘사굴산’으로 불렀을 가능성 논의

재경 의령군향우회가 2015년 9월 1일 발행한 《재경 의령군향우회60년사》에서는 자굴산(闍崛山)이 원래 ‘도굴산’으로 불리다가, '闍'를 ‘사’로도 읽는다는 이유로 ‘사굴산’으로 불리다가, ‘자굴산’으로 부르게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자굴산이 위치하고 있는 경상남도 의령군의 지역민들이 그 지역의 유명한 진산(鎭山)을 한자의 음이 두 음이나 세 음으로 사용된다고 해서 특별한 까닭 없이 그 진산 이름을 이렇게 불렀다 저렇게 불렀다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자는 뜻글자로서 그 뜻에 그 음을 중시하는 특성이 있다. 특별한 까닭 없이 그러한 한자의 속성조차 버린 채 그 지역의 신성한 진산 이름을 이렇게 불렀다 저렇게 불렀을 리가 없다.

'闍'가 ‘사’ 음으로 쓰일 경우는 옛 중국이나 한국에서 주로 불교와 관련된 경우였음이 문헌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억불숭유 정책을 중시하던 조선 시대 정서로 보아, '闍'의 ‘사’ 음을 취해 ‘사굴산’으로 불렀을 가능성도 없다. 자굴산의 한자 표기 ‘闍崛山’이 발견되는 문헌으로는 1454년(단종 2년)에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인데, 560여 년 전의 문헌이다. 이 기간 동안에 자굴산을 ‘사굴산’으로 불렀다는 전해 오는 이야기도 특별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이런 점으로 보아, 자굴산이 ‘사굴산’으로 불리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

 

7. ‘자굴산’의 뜻풀이

 

나는 부르는 말 ‘자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 사이에는 발음상으로 일치한다는 점을 규명하였다. 다음에는 자굴산(闍崛山)의 뜻풀이를 해 두고자 한다. 《강희자전(康熙字典)》이나 《집운(集韻)》에서 ‘闍’가 ‘자’ 음으로 쓰일 경우는 그 뜻이 ‘성대’(城臺)라고 하였다. 따라서 ‘闍’는 ‘성대 자’가 된다.

‘성대’(城臺)’를 직역하면 ‘성곽(성의 담)의 대(臺)’가 된다. ‘대’(臺)는 기본적으로 ‘흙이나 돌 따위로 높이 쌓아 올려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 곳’을 뜻하는데, ‘돈대’(墩臺)라고도 한다. 성곽의 대(臺)는 성문 위에 만들기도 하는데, 이를 특히 ‘성문대’라고 한다. 성문이 없는 곳에라도 성곽의 군데군데에 특별하게 더 높게 만들어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기도 했다. 옛날에는 성(城)의 주요 역할이 적을 막는 데 있었으므로, 성대 또한 적이나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한 망대(望臺)의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망루’(望樓)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성곽이든 성곽 아닌 곳이든 적이나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높이 지은 다락집 모양을 가리킨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성대’(城臺)’란 ‘성의 망대’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유의할 것은 ‘성대’는 ‘성문의 망대(성문대)’나 ‘성의 망루(다락집 모양의 망대)’라고 한정해서는 안 된다. 성대는 성문이 없는 곳에도 만들기도 하고, 다락집 모양이 아닌 다른 모양이나 특별한 건물 없이 일반 성곽보다 상대적으로 우뚝 높고 평평한 모양으로 만들기도 했다.

자굴산(闍崛山)의 가운데 글자 ‘崛’(굴)은 이가원, 장삼식 공저 《대자원(大字源)》(유강출판사, 서울. 1972)에서 ‘산 높을 굴’, ‘불끈 솟을 굴’로 뜻풀이를 하고, 민중서관편집국 편 《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민중서림, 서울. 1966)에서 ‘우뚝 솟을 굴’로 뜻풀이하고 있다.

나는 위와 같은 점들을 고려하여, ‘자굴산’(闍崛山)의 뜻풀이를 ‘성대(성의 망대) 모양을 한 높은 산’이라고 하는 바이다.

8. 자굴산의 어원

 

자굴산을 한자로 ‘闍崛山’이라고 쓰는데, 나는 중국의 운서 《집운(集韻)》과 자전 《강희자전(康熙字典)》에서 ‘闍’를 ‘자’ 음으로 발음할 경우 그 뜻이 ‘성대’(城臺)라고 한 점과 ‘崛’(굴)을 자전에서 일반적으로 ‘산 높을 굴’, ‘우뚝 솟을 굴’ 등으로 뜻과 음을 명시하고 있는 점을 근거로 하여, 그 뜻풀이를 ‘성대(성의 망대) 모양을 한 높은 산’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자어 ‘자굴산’(闍崛山)에 대한 뜻풀이와는 달리 이보다 좀 더 근본적으로 따져서 ‘자굴산’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근원되는 말 곧 유래가 되는 말은 무엇일까를 살펴보고자 한다. 어떤 단어의 근원적인 형태나 어떤 말이 생겨난 근원을 언어학에서는 어원(語源)이라고 하는데, 나는 바로 ‘자굴산’의 어원을 밝혀 보고자 한다.

자굴산은 수천 년 전에도 솟아 있었고, 자굴산을 중심으로 수천 년 전에도 사람들이 살았다. 자굴산 가까이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는 자굴산에 대한 어떤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자굴산에 대한 어떤 이름 없이 사람들이 자굴산 가까이에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불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붙여진 자굴산 이름은 한자어가 아닌 우리나라의 고유한 말로 지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 한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때는 중국의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서기 전 108년에 우리 땅에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한 시기와 비슷하며, 본격적인 한자의 전래는 6-7세기 무렵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굴산은 이 이전에도 솟아 있었고, 이 이전에도 자굴산 주위에는 사람들이 살면서 지굴산에 대한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신라 삼국통일(676년) 후 경덕왕(재위 742-765년)은 우리 고유어의 지명을 대대적으로 한자어로 고치는 정책을 펼쳤는데, 우리 고유어 지명을 한자어로 어떻게 바꾸었는가 하는 것은 ‘삼국사기’ 지리지에 전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국가에서 우리 고유어의 지명을 한자어로 지명으로 바꾼다 할지라도 모든 지명을 다 바꿀 수는 없었으며, 설령 바꾸었다 할지라도 일반 백성들은 익숙한 고유어 지명을 쓰거나, 고유어 지명과 새로 바꾼 한자어 지명을 병용하여 쓰거나, 일상 언어생활에서는 고유어 지명을 쓰고 행정기관 문서에서는 한자어 지명을 쓰는 등 복잡한 양상을 띠었을 것이다.

오늘날도 우리나라 각 지역에는 수많은 고유어 지명이 남아 있다. 의령군의 경우만 하더라도 궁류면의 ‘한우산’(寒雨山)은 고유어 ‘찰비산’으로 남아 있으며, 봉수면의 ‘국사봉’(國師峰)은 고유어 ‘뉘비산’(누에산)으로 남아 있다. 의령읍의 ‘대밭등’, 가례면의 ‘웃마을’, 대의면의 ‘삼바실’, 화정면의 ‘말머리재’, 용덕면의 ‘구무더미’, 정곡면의 ‘달재’, 지정면의 ‘버드실’, 부림면의 ‘달밭꼬’, 유곡면의 ‘돌실’, 낙서면의 ‘우무실’, 칠곡면의 ‘댓갱이’ 등 고유어 지명이 수없이 많이 남아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자굴산’도 우리 고유어에서 한자어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으며, 그 어원(말의 근원적인 형태)과 그 어원의 변천 과정을 밝힐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자굴산의 어원을 밝히기 위해 ‘자굴산’을 부르는 말로서 ‘자굴산’과 비슷한 발음의 말에 유의하고자 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의령 사람들은 ‘자굴산’을 ‘자골산’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어렸을 때 1950년대는 ‘자골산’이라는 말을 아주 흔하게 사용했다. 2015년 현재에도 자굴산의 주요 고개인 ‘자굴티’를 ‘자골티’ 혹은 ‘재골티’로 부르기도 한다. 2003년에 편찬된 《의령군지》(의령군지편찬위원회, 2003:329쪽)에서도 ‘자굴티’를 ‘재골티’라고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허백영은 의령문화원 발행 ‘의령문화’ 제4호 ‘자굴산의 한자 이름 闍崛山’이라는 글에서 자굴산 이름과 관련하여, 의령의 향토사 관계 자료를 비롯해 행정 자료나 군 지도 등에 여러 가지 이름을 써 왔던 사실로서 “堵堀山, 楮窟山, 紫骨山, 渚堀山, 紫屈山”을 예로 들고 있다.(허백영, 1998:76쪽). 여기서 유의할 것은 자굴산을 한자로 ‘紫骨山’(자골산)이라고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로 볼 때, 나는 ‘자굴산’은 한자어로는 ‘자굴산’(闍崛山)으로 불렀지만, 우리 고유어로는 ‘자골’이라는 말에 한자어 ‘산’(山)을 결합하여 ‘자골산’으로 불렀을 것임이 틀림없다고 본다. 옛날에는 지명에서 고유어와 한자어가 병용되어 사용될 경우에는 고유어가 먼저 태어나 사용되고, 그 뒤에 행정 정책에 따라 고유어가 한자어로 변경된 것이 일반적이므로, 자굴산 이름에 있어서도 먼저 태어난 고유어 ‘자골산’에서 한자어 ‘자굴산’(闍崛山. *옛 표기 형태로 ‘쟈굴산’)으로 변경되었다고 본다. 20세기 중반까지 일반적으로 자굴산은 ‘자골산’과 ‘자굴산’ 두 이름으로 일컬어졌다. 21세기 초에도 ‘자굴티’를 ‘재골티’로 부르는 모습에서 ‘자골산’으로 일컫던 ‘골’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유어 ‘자골산’과 한자어 ‘자굴산’이 동시에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은 지역민들이 자연스럽게 ‘자골산’을 ‘자굴산’으로 변경시킨 것이 아니고, 행정 정책에 따라 한 것이기 때문에 지역 일반인들은 언어 습관에 따라 오래도록 ‘자골산’이라는 이름도 병용한 것이다.

 

앞에서 나는 한자어 ‘자굴산’은 ‘성대(성의 망대) 모양을 한 높은 산’이라고 뜻풀이했는데, ‘자골산’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우선 고유어 ‘골’의 뜻풀이를 하자면, 그것은 현대어의 ‘골짜기’와 같은 뜻이다. ‘골짜기’는 ‘골’(谷)에 낮잡음을 뜻하는 ‘-짝’이 결합되고, 다시 여기에 말의 안정화를 위한 접사 ‘-이’가 첨가된 것이다.

다음으로 ‘자골산’의 ‘자’는 어떤 형태의 고유어에서 변했으며, 그 뜻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자. 이를 위해 한자어 ‘자굴산’(闍崛山)의 ‘자’(闍)의 뜻이 ‘성대’(성의 망대)임을 환기하고, 이와 관련하여 ‘성’(城)의 우리 옛말 고유어가 ‘잣’이었음을 환기하면 될 것이다. ‘잣’이 ‘성’(城)의 옛말 고유어로 일반화되어 쓰였음은 조선 시대 문헌에서 흔하게 나타난다.

 

“城은 자시라.”(성은 잣이라)《월인석보》

“城 잣 ”《훈몽자회》

“錦官ㅅ 잣 밧긔”《두시언해 초간본》

“예셔 잣 이”《노걸대언해 상》

 

2015년 현재 널리 사용하고 있는 한자어 ‘자굴산’은 우리 고유어 ‘잣골’과 한자어 ‘산’(山)이 결합하여 ‘잣골산’이 되고, 뒤에 ‘잣골산’이 ‘자골산’으로 바뀌고, ‘자골산’이 한자어 ‘자굴산’으로 바뀐 것이다.

자굴산은 가야 시대, 병자호란 등 수많은 전쟁이 있을 때마다 지역과 백성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산의 전체 모습은 성(城)의 역할을 하고, 산꼭대기는 성의 망대 역할을 하고, 수많은 골짜기는 백성들의 구체적인 피난처였다. 6.25전쟁 때도 지역 주민들은 자굴산으로 모여들어 피난하였다.

그래서 현재의 한자어 ‘자굴산’(闍崛山)은 아주 옛날 “성(잣) 모양을 하고서 수많은 골짜기를 품고 있는 산”이라는 뜻을 지닌 우리 고유어 ‘잣골산’으로 불리다가, 나중에 ‘자골산’으로 바뀌고, 고유어 지명을 한자어 지명으로 바꾸어 문서에 기록하는 행정 정책에 의해 ‘자골산’은 ‘잣골산’의 원뜻과 비슷한 인상을 주는 “성대(성의 망대) 모양을 한 높은 산”이라는 뜻을 지닌 ‘자굴산’(闍崛山)으로 이름이 변경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곧 현재 널리 일컬어지고 있는 한자어 ‘자굴산’(闍崛山)의 어원(말의 근원 형태)은 “성(잣) 모양을 하고서 수많은 골짜기를 품고 있는 산”이라는 뜻을 지닌 우리 고유어 ‘잣골산’(‘산’은 한자어)이며, 그 뒤 ‘잣골산’이 변하여 ‘자골산’이 되고, 다시 ‘자골산’이 한자어 ‘자굴산’(闍崛山)으로 변한 것이다.

 

9. 요약

자굴산은 조선 전기 1454년(단종 2년)에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1481년(성종 12년)에 완성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 한자로 ‘闍崛山’이라고 표기한 것이 초기 문헌 기록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부르는 말인 ‘자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과의 발음 사이에 일치 혹은 불일치를 두고 2015년 현재까지도 서로 어긋나는 주장을 하고 있다.

부르는 말 ‘자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의 음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한글 표기가 있는 한자 자전에 ‘闍’의 음이 ‘도’와 ‘사’ 둘로만 나타나고 ‘자’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굴산의 한자 표기 ‘闍崛山’은 ‘도굴산’으로 읽어야 하며, 현재 부르는 말 ‘자굴산’은 원래 ‘도굴산’으로 불리다가 ‘자굴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굴산은 처음 ‘도굴산’으로 불리다가 나중에 ‘사굴산’으로 불리다가 현재처럼 ‘자굴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까지 한다. 그러한 주장의 사례는 2015년 9월 재경 의령군향우회 발행 《재경 의령군향우회60년사》 130쪽에도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1996년부터 의령 향토 문화 연구가 허백영(의령문화원장 역임)은 1984년 초간의 《명문한한대자전》에 '闍'에 ‘자’ 음이 있음을 내세워 ‘자굴산’은 ‘도굴산’에서 바뀐 이름이 아니고 처음부터 한자 표기 ‘闍崛山’는 그 음이 ‘자굴산’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허백영의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부르는 말 ‘자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 음 사이의 불일치를 계속 주장하는 사람들의 까닭은 한글 표기가 있는 수많은 한자 자전(옥편)에 ‘闍’의 음을 ‘도’와 ‘사’ 둘로만 나타난 것이 보편적이고, 그러한 내용에 너무도 오래도록 익숙해 왔고, 게다가 한글 표기의 한자 자전 가운데 《명문한한대자전》이 다른 자전들에 비해 오랜 세월 뒤에 발행되었다는 점에서 그것으로 조전 전기의 ‘闍’의 음에 ‘자’ 음이 있었다고 쉽게 추정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나는 우리나라에 한글 표기의 한자 자전(옥편) 출판의 시작이 지금부터 약 100년 전 지석영(池錫永)이 1906년 저술을 완성 뒤 1909년 7월 회동서관(匯東書館)에서 발행한 ≪자전석요(字典釋要)》부터이고, 한자 '闍'의 음을 한글로 ‘도’ 음과 ‘사’ 음으로 명시한 자전은 많지만, ‘자’ 음을 명시한 자전은 명문당(名文堂)에서 1984년 초판으로 발행한 《명문한한대자전(明文漢韓大字典)》 외에는 찾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부르는 말 ‘자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 음 사이의 일치 혹은 불일치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조선 전기에 한자 '闍' 음의 실상을 규명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선 전기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자의 뜻과 음의 이해와 활용을 위해 중국의 운서(韻書)와 자전(字典)을 주로 활용했으므로, 나는 여러 기초 연구를 거쳐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중국의 북송(北宋) 인종(仁宗)의 칙명에 따라 정도(丁度) 등이 1039년에 편찬한 《집운(集韻)》과 청(淸) 나라 강희제(康熙帝)의 칙명으로 장옥서(張玉書), 진정경(陳廷敬) 등이 1716년(강희 55년)에 완성한 《강희자전(康熙字典)》을 연구한 결과 ‘闍’는 ‘도’ 음(東徒切), ‘사’ 음(時遮切)과 더불어 ‘자’<*옛 표기 형태로는 ‘쟈’> 음(之奢切)도 명시하고 있음과 그 뜻은 ‘성대’(城臺)라고 한 점을 규명하였다. ‘之奢切’이 ‘자’ 음이라고 하는 까닭은, 옛날 중국에서 한자음을 표기할 때 반절법(半切法)이라는 방식을 취했는데, ‘之’(지)에서는 초성 ‘ㅈ’을 택하고 ‘奢’(사)에서는 중성 및 종성인 ‘아’을 택하여 ‘자’로써 ‘闍’의 음을 표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강희자전》에는 ‘闍’는 ‘도’ 음, ‘사’ 음, ‘자’ 음을 명시하면서, ‘闍’의 ‘자’ 음과 관련하여 “〚集韻〛之奢切音遮城臺也”라고 하였다. 곧 “집운(集韻)에서 ‘闍’는 지사절(之奢切) 자(遮) 음이며, 뜻은 성대(城臺)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참고로 ‘遮’는 ‘자’<*옛 표기 형태로는 ‘쟈’>와 ‘차’ 두 음이 있는데, 《집운(集韻)》에서 ‘遮’는 평성(平聲) ‘마’(麻) 운의 ‘자’ 음(之奢切) 대표글자로 삼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다시 《강희자전》에서 기록하고 있는 바로서 《집운(集韻)》(1039년)에서 ‘闍’ 음에 ‘자’ 음이 실지로 명시되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집운(集韻)》을 검토한 결과 《집운(集韻)》의 ‘平聲三’의 ‘麻第九’의 ‘遮(之奢切)’ 곧 ‘자’ 음에 “闍 城臺也詩出其闉闍”라고 되어 있었다. 이는 ‘闍’가 ‘자’ 음(之奢切)으로서 뜻은 성대(城臺)이며, 《시경(詩經)》에 ‘出其闉闍’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참고로 《시경(詩經)》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으로 공자(孔子)가 편찬하였다고 전하여지나 확실하지는 않다. 《강희자전》에서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분명히 《집운(集韻)》에도 ‘闍’가 ‘자’ 음을 지니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1039년 《집운(集韻)》이 편찬되기 이전부터 ‘闍’는 ‘자’<*옛 표기 형태로는 ‘쟈’> 음을 지니고 있었음을 규명하였고, 따라서 조선 전기에도 부르는 말 ‘자굴산’<*옛 표기 형태로는 ‘쟈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 사이에는 발음 관계가 일치했다고 단정할 수 있게 되었다.

《강희자전(康熙字典)》이나 《집운(集韻)》에서 ‘闍’가 ‘자’ 음으로 쓰일 경우는 그 뜻이 ‘성대’(城臺)라고 하였다. 따라서 ‘闍’는 ‘성대 자’가 된다. ‘崛’은 일반적으로 ‘산 높을 굴’, ‘우뚝 솟을 굴’로 그 뜻과 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나는 한자어 ‘자굴산’(闍崛山)의 뜻풀이를 ‘성대(성의 망대) 모양을 한 높은 산’이라고 하는 바이다. 유의할 것은 ‘성대’는 ‘성문의 망대(성문대)’나 ‘성의 망루(다락집 모양의 망대)’라고 한정해서는 안 된다. 성대는 성문이 없는 곳에도 만들 기도 하고, 다락집 모양이 아닌 다른 모양이나 특별한 건물 없이 일반 성곽보다 상대적으로 우뚝 높고 평평한 모양으로 만들기도 했다.

나는 한자어 ‘자굴산’(闍崛山)에 대한 뜻풀이와는 달리 이보다 좀 더 근본적으로 ‘자굴산’이라는 말의 어원(語源) 곧 ‘자굴산’의 근원적인 말의 형태를 여러 근거를 들어 우리 고유어 ‘잣골’에 한자어 ‘산’(山)이 결합한 ‘잣골산’이라고 했다. ‘잣’은 ‘성’(城)의 우리 옛 고유어이며, ‘골’은 ‘골짜기’(谷)의 뜻이다. 현재의 한자어 ‘자굴산’(闍崛山)은 아주 옛날 “성(잣) 모양을 하고서 수많은 골짜기를 품고 있는 산”이라는 뜻을 지닌 우리 고유어 ‘잣골산’으로 불리다가, 나중에 ‘자골산’으로 바뀌고, 다시 고유어 지명을 한자어 지명으로 바꾸어 문서에 기록하는 행정 정책에 의해 ‘잣골산’의 원뜻과 비슷한 인상을 주는 “성대(성의 망대) 모양을 한 높은 산”이라는 뜻을 지닌 한자어 ‘자굴산’(闍崛山)으로 이름이 변경된 것이다. 곧 현재 널리 일컬어지고 있는 한자어 ‘자굴산’(闍崛山)의 어원(말의 근원 형태)은 “성(잣) 모양을 하고서 수많은 골짜기를 품고 있는 산”이라는 뜻을 지닌 우리 고유어 ‘잣골산’(‘산’은 한자어)이며, 그 뒤 ‘잣골산’이 변하여 ‘자골산’이 되고, 다시 ‘자골산’이 한자어 ‘자굴산’(闍崛山)으로 변한 것이다.

행정 기록에는 한자로 ‘闍崛山’(자굴산)으로 썼더라도 일반인들은 20세기 중반까지도 고유어로 ‘자골산’이라 말하기도 했으며, 고유어 ‘자골산’을 한자로 소리 나는 대로 ‘紫骨山’(자골산)으로 적기도 했다. 2003년에 편찬된 ‘의령군지’에는 ‘자굴티’를 ‘재골티’로 말하는 것을 지적했는데, 이것은 고유어 ‘자골산’의 일부 형태가 남은 탓이다. 어떤 기록에는 ‘자굴산’(闍崛山)을 ‘堵堀山’으로 적은 것이 나타나는데 한글 표기의 현대 한자 자전에서 ‘堵’를 ‘도’ 음으로만 명시했다고 해서 이를 ‘도굴산’으로 읽어서는 안 되며, 중국의 ≪광운(廣韻)≫(1008년), 《집운(集韻)》(1039년), 《강희자전(康熙字典)》(1716년) 등에 ‘자’<*옛 표기 형태로는 ‘쟈’> 음(音者)도 명시하고 있으므로, ‘자굴산’으로 읽어야 한다.

 

10. 의령의 공공 기관과 단체에 바라는 말

 

자굴산(闍崛山)은 오랜 옛날 경상남도 의령 땅에 의령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 온 영산(靈山)이며 진산(鎭山)이다. 그런데도 2015년 현재까지 부르는 말 ‘자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과의 사이에 발음의 일치 혹은 불일치의 논란으로 많은 사람들과 각종 문헌과 인터넷 매체와 등산객들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다. 나는 이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내놓게 되었다..

의령군을 비롯한 여러 공공 기관과 전국 각 지역에 조직되어 있는 의령군향우회를 비롯한 의령 관련 여러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이제부터는 자굴산 이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일관성 있게 널리 소개해 주기를 바라며, 더 이상 의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산 ‘자굴산’(闍崛山) 이름과 관련하여 현재와 미래에 혼란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해 주기 바란다.

 

『한글 표기가 있는 우리나라의 한자 자전은 1909년 이후에 나타나는데, 그러한 한글 표기가 있는 한자 자전에서 자굴산(闍崛山)의 한자 표기 가운데 ‘闍’를 ‘도’ 음과 ‘사’ 음으로만 명시한 것이 보편적이고, 1984년 명문당(名文堂)에서 발행한 《명문한한대자전(明文漢韓大字典)》에서 ‘闍’의 ‘자’ 음을 명시한 것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2015년 현재까지도 《재경 의령군향우회60년사》의 책 내용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부르는 말 ‘자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 사이에는 발음이 일치하지 않으며 ‘자굴산’은 ‘도굴산’에서 변한 말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의령군 칠곡면 출신 허만길 문학박사(시인. 소설가. 전 문교부 편수관)는 2016년 1월 의령문화원 발행 《의령문화》 제25호에 발표한 논문 <의령 자굴산의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음의 일치성 및 어원 연구>를 통해 자굴산의 한자 표기 ‘闍崛山’은 조선 전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년) 등에 나타나며, 조선 전기에 우리나라 조상들은 한자의 뜻과 음의 이해와 활용을 위해 중국에서 편찬한 운서(韻書)와 자전(字典)을 활용했음을 고려하면서 중국의 《집운(集韻)》(1039년)과 《강희자전(康熙字典)》(1716년)을 직접 연구한 결과 ‘闍’에 ‘자’<*옛 표기 형태로는 ‘쟈’> 음(之奢切)이 있으며 그 뜻은 ‘성대’(城臺)라는 점을 규명하고서, 조전 전기에도 부르는 말 ‘자굴산’<*옛 표기 형태로는 ‘쟈굴산’>과 한자 표기 ‘闍崛山’ 사이에는 발음이 일치했다고 결론지었다.

아울러 허만길 문학박사는 한자어 ‘자굴산’(闍崛山)의 뜻풀이를 ‘성대(성의 망대) 모양을 한 높은 산’이라고 했으며, ‘자굴산’의 근원되는 말의 형태 곧 어원(語源)은 우리 고유어 ‘잣골’에 한자어 ‘산’(山)이 결합한 ‘잣골산’이라고 했다. ‘잣’은 ‘성’(城)의 옛 고유어이며, ‘골’은 ‘골짜기’(谷)의 뜻으로서 ‘잣골산’은 “성(잣) 모양을 하고서 수많은 골짜기를 품고 있는 산”이라는 뜻인데, 뒤에 ‘잣골산’이 변하여 ‘자골산’이 되고, 다시 ‘자골산’은 고유어 지명을 한자어 지명으로 바꾸어 문서에 기록하는 행정 정책에 의해 한자어 ‘자굴산’(闍崛山)으로 변경되었다고 했다.

허만길 문학박사는 행정 기록에는 한자로 ‘闍崛山’(자굴산)으로 썼더라도 일반인들은 20세기 중반까지도 고유어로 ‘자골산’이라 말하기도 했으며, 고유어 ‘자골산’을 한자로 소리 나는 대로 ‘紫骨山’(자골산)으로 적기도 했으며, 2003년에 편찬된 ‘의령군지’에는 ‘자굴티’를 ‘재골티’로 말하는 것을 지적했는데, 이것은 고유어 ‘자골산’의 일부 형태가 남은 탓이라고 했다. 어떤 기록에는 ‘자굴산’(闍崛山)을 ‘堵堀山’으로 적은 것이 나타나는데 한글 표기의 현대 한자 자전에서 ‘堵’를 ‘도’ 음으로만 명시했다고 해서 이를 ‘도굴산’으로 읽어서는 안 되며, 중국의 ≪광운(廣韻)≫(1008년), 《집운(集韻)》(1039년), 《강희자전(康熙字典)》(1716년) 등에 ‘자’<*옛 표기 형태로는 ‘쟈’> 음(音者)도 명시하고 있으므로, ‘자굴산’으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참고 문헌〗

ㅇ 김혁제, 김성원(1984), 《명문한한대자전(明文漢韓大字典)》(명문당, 서울)

ㅇ 민중서관편집국 편(1966), 《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민중서림, 서울)

ㅇ 이가원, 장삼식(1972), 《대자원(大字源)》(유강출판사, 서울)

ㅇ 의령군지편찬위원회(2003), 《의령군지》

ㅇ 의령문화원(2004), 《의령실록》

ㅇ 재경 의령군향우회(2015), ‘의령의 명산 자굴산’, 《재경 의령군향우회60년사》

ㅇ 허만길(2015), ‘자굴산 옛 이름에 관해 연구 토론을 바라며’, 《의령신문》 제407호 2015년 12월 4일(의령신문사, 경남 의령군)

ㅇ 허백영(1996), ‘자굴산 산 이름’, 《장함(獐含)》(재부산 칠곡향우회, 부산)

ㅇ 허백영(1998), ‘자굴산의 한자 이름 闍崛山’, 《의령문화》 제4호(의령문화원, 경남 의령군) ㅇ 張玉書, 陳廷敬 등(1716), 《康熙字典》

ㅇ 丁度 등(1039), 《集韻》

ㅇ 陳彭年, 邱雍 등(1008), ≪廣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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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허만길, ‘의령 자굴산의 부르는 말과 한자 표기음의 일치성 및 어원 연구’, 《의령문화》 제25호 16-34쪽 (발행 의령문화원, 경남 의령군. 2016. 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