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 시

(허만길 시) 밤에 밤을 만나지만

별다홍 2021. 7. 6. 15:03

밤에 밤을 만나지만

                      시인 허만길

 

밤은 낮에 만날 수 없다.

밤을 만나려면 밤 속에 들어가야 한다.

밤에 밤을 만나기 위해

밤을 기다리고 밤 속을 헤맨다.

밤의 눈, 코, 입을 만나고 싶고

밤의 배, 팔, 다리를 만나고 싶고

밤의 심장, 마음, 언어를 만나고 싶다.

밤을 그렇게 만나고 싶어도

그 밤을 제대로 만날 수가 없다.

밤을 만났다면 그것은

밤의 허울이나 컴컴한 겉옷 같은 것이었다.

 

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밤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밤이 무엇을 듣는지도

알 수가 없다.

밤은 밤이면 늘 내 곁에 와 있지만

밤을 알 수 있는 방법조차 안 보인다.

 

밤은 나에게 휴식을 주기도 하고

밤은 나에게 잠 못 이루는

괴로움을 주기도 한다.

밤은 밤이면 나에게 와 있으면서도

어디로 돌아다니는지

내 손에, 내 마음에 잡히지를 않아

그 또한 나에게 고통을 준다.

 

밤이 진정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면

나는 밤과 단 둘이 누워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밤이다.

도대체 밤은 제대로 알 수 없기에

그래서 그것이 밤인가 보다.

밤을 알 수 있다면 이미 그것은

밤이 아닌 것이 밤인가 보다.

밤에 밤을 만나지만

알 수 없는 것이 밤이다.

 

밤은 밤만이 밤이 아니다.

너도 밤일 수 있고 나도 밤일 수 있다.

세상 모든 것이 밤일 수 있다.

그래도 나는 밤의 더욱 뚜렷한 참모습을

만나고자 할 것이다.

알 수 없는 밤이지만

밤 또한 나의 참모습을 알고 싶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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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월간 한국국보문학 2018년 6월호 (도서출판 국보, 서울)